이탈리아 전설적 마피아 두목 프로벤자노 43년 도피생활 끝에 쇠고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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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벤자노가 11일 이탈리아 경찰에 체포돼 호송되고 있다. [시칠리아 AP=연합뉴스]

'두목 중의 두목' '돈 콜레오네의 유령' '트랙터'….

이탈리아의 전설적 마피아 두목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73)가 43년의 수배생활 끝에 경찰에 체포됐다고 로이터 통신, BBC 방송, 뉴욕 타임스(NYT)가 11일 보도했다.

프로벤자노는 이날 고향인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 콜레오네 인근의 한 농가에서 세탁물 바구니를 받다가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프로벤자노의 고향인 콜레오네는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대부'에서 주인공 가족의 성으로 쓰이면서 알려졌다.

프로벤자노는 10대 후반에 마피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30세가 되던 1963년부터 경찰에 쫓겨왔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수배자로 산 것이다. 궐석재판에서 살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것만도 최소 여섯 차례다. 10여 건이 넘는 살인 혐의 중에는 92년 마피아 사건을 담당한 판사 두 명이 살해된 사건도 포함됐다.

93년 일명 '토토'로 알려진 전 두목이 체포되자 그가 조직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트랙터'로 불렸다. 배신자나 적을 '트랙터처럼 깔아뭉개 제거한다'고 해서 생긴 무시무시한 별명이다. 그는 두목이 된 뒤 마약 밀매 등에 의존한 과거와 달리 '화이트 컬러'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조직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경찰들에게 그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번번이 체포를 눈앞에 두고 놓쳐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사진도 제대로 입수하지 못해 26세 때 찍은 것이 고작이었을 정도다. 지난해 마피아 내부 정보원에게서 도움을 얻어 컴퓨터 그래픽으로 나이 든 얼굴의 사진을 합성해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도 그는 2년 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전립선 치료를 받은 뒤 몸이 쇠약해지자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다른 이름으로 이탈리아 당국의 건강보험 혜택까지 받았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경찰은 최근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이 살고 있는 집과 측근의 거주지를 집중적으로 감시한 끝에 그의 가족이 있는 집에서 나온 세탁물이 인근 농가들로 주기적으로 배달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날 경찰은 세탁물 배달 차를 추적, 농가에서 문을 열고 나와 물건을 받으려는 그를 덮쳤다. 체포되는 순간 그는 아무런 저항도, 말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에 따르면 그는 한 농가에서 2~3일씩만 머무르는 방법으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또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는 반드시 타자기나 친필로 쓴 쪽지를 이용했다.

프로벤자노의 체포 소식은 11일 이탈리아 총선 결과를 제치고 각 방송의 톱 뉴스로 보도됐다.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이탈리아 대통령도 내무장관에게 그의 체포를 치하하는 뜻을 전했다. BBC는 "시칠리아 경찰의 하루하루는 마피아와의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시칠리아의 법과 질서를 위해 프로벤자노 체포는 매우 중요한 승리"라고 보도했다. NYT는 12일 "프로벤자노는 이탈리아 경찰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며 "그가 고위 관료들과 친분이 두터워 수사망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의혹도 있다"고 전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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