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인의이것이논술이다] 논술, 결국은 철학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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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처음 대학 입시 논술을 도입하던 1990년대 초, 논술의 모델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시험이었다. 당시 서울대 인문대 학장이었던 철학과의 모 교수가 전 세계로 인력을 파견하여 연구한 결과 가장 알맞은 논술 시험 모델을 도출했던 것이다. 프랑스는 문제만 주는 반면 한국은 교육 여건상 제시 자료를 함께 주고 시험을 치른다는 정도가 차이이다. 현재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이 기본 골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바칼로레아는 통합교과적 성격을 갖는 시험이다. 문.이과 공통으로 치르는 철학이 어렵기로 유명하지만 프랑스어, 역사, 지리, 수학 등 여러 과목을 논술 형식으로 치른다. 한국에서는 논술을 처음 도입할 때 바로 이 시험 형식을 따라 각종 교과 주제들을 통합적으로 출제했다. 통합 논술이라는 명칭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지만, 실제로 그동안의 논술이 바로 통합 논술이었던 것이다.

물론 논술 시험의 구체적 형식은 조금씩 달랐고 현재도 대학마다 조금씩 다르다. 또한 앞으로의 논술이 특별히 달라질 여지도 별로 없다. 대중문화, 기술문명, 사회적 신드롬, 세계화, 정보화, 삶의 질, 소비사회, 인간의 가치 등 그동안 출제되었던 주제들만 살펴봐도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어느 하나도 단일 교과의 단편 지식만으로는 풀 수 없는 것들이었다. 즉, 모든 교과를 아우르는 교과라 할 수 있는 철학이 논술의 본질이었던 셈이다.

프랑스의 철학은 특히나 논리적 형이상학적 문제들뿐 아니라 역사, 정치, 사회, 과학, 경제, 예술 등 현실의 여러 문제에도 관심이 깊었다. 따라서 출제되는 문제의 폭도 그만큼 넓었다. 한국에서 철학과를 졸업한 학생도 바칼로레아 문제를 풀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아가 한국에서는 고교 교과 과정에 철학이 없을 뿐 아니라 일반인이 대학에서도 철학의 일부만을 접하기 때문에 결국 논술이 철학이라는 점을 쉽게 깨닫지 못했다.

사실 제시 자료의 출처가 어디냐가 논란이 많은데, 사실 그동안 수능에서와 마찬가지로 논술에서도 교과서 안팎에서 문제가 나왔다. 요점은 교과서 안팎 여부가 아니라, 교과서의 수준을 어느 정도라고 합의하느냐이다. 현재 과목별로 수종의 교과서가 있고, 사회 과목만도 10개가 넘는다. 교과서 안에서만 지문을 낸다 해도 읽을 책이 100권이 넘는 셈이다. 게다가 특정 출판사의 교과서에서 낸다 할 때 형평성의 문제도 따른다. 따라서 자료를 교과서 안에서 내느냐 밖에서 내느냐 식의 접근은 의미가 없고, 어떤 눈높이의 자료를 제시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교수들은 학생들 평균보다 교과서의 수준을 약간 높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 수준의 자료와 난이도로 문제를 낸다. 이 경향은 지금껏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며, 교수가 문제를 내는 이상 어느 나라에서도 그렇다. 교과서를 다 소화한 학생을 기준으로 문제를 내면, 쉽게 말해 수능 만점자를 기준으로 문제를 내면, 대부분의 학생에게 문제는 언제나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논술 준비 방법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식의 논술이건, 논술 시험이 존재하는 한 학생들은 개별 교과를 다 이해하고 나아가 그것을 연결시켜 나름의 주관을 갖춰야만 한다. 변한 것은 없다. 원래부터 이것이 논술의 특성이었고 철학의 특징이었다.

김재인 유웨이 중앙교육 오케이로직 논술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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