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무술 합이 117단…'붕붕 뜨는'아크로바틱 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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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살자'

거실 천장에 걸려 있는 가훈과 달리 이 가족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지팡이에 의지하는 할아버지는 알고보니 택견 수련자고, 설겆이.빨래를 도맡아 하는 아버지도 태권도 고수다. 부드러워 보였던 어머니와 딸은 공중 2회전 반바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는 삼촌은 취권의 대가다. 온 가족의 무술 합계는 무려 1백17단!

10월 5일까지 문화일보홀에서 공연 중인 퍼포먼스 '점프(Jump.사진)'는 3년 이상 철저하게 작품을 준비해 온 만큼 완성도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확실히 잡아냈다. 태권도.택견.우슈.합기도 등의 무술과 잘 짜여진 아크로바틱 연기가 일단 놀랍다. 팸플릿에 '1시간 30분 내내 붕붕 떠있다'는 카피 그대로 배우들은 연신 무대 위에서 구르고 뛰고 날아간다.

그렇다고 쇼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적인 색채의 가족 이야기가 버무려진다. 대가족이 살고 있는 집. 할아버지는 일요일 아침마다 온 가족을 모여놓고 수련을 행한다. 그날 밤 이 집의 이력을 모르는 용감한 도둑 두 명이 침입하고 이 때부터 무술 가족과 도둑의 막상막하 대결이 펼쳐진다. 중간중간 딸과 청학동 사나이의 사랑, 도둑을 가족으로 오인하는 등의 코미디적 설정으로 지루할 겨를이 없다.

'점프' 공연은 어쩌면 무리한 도전이었다. '난타'를 연출하기도 한 연출자 최철기는 4년전부터 무술과 연극을 결합한 작품을 구상하고, 배우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무술 유단자들은 연기가 부족하고, 연기자들은 무술 실력이 형편 없었다. 그는 뜻있는 연극 배우와 체조선수들로 팀을 꾸려 2년 넘게 훈련을 감행했다.

이들은 지난해말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별난 가족'이라는 타이틀로 조심스레 관객 반응을 살폈다. 이후 올 상반기에는 강남의 우림 청담시어터에서 공식적인 첫 공연을 가졌다. 젊은 연인끼리든, 남녀노소로 구성된 한 가족이든 재밌게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이다. 02-722-3995.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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