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장 개방압력 미국의 속사정|남아도는 쇠고기 처분할곳이 없다.|재고량15만t, 1억여두 사육|급증하는 보조금이 재정압박|무역수지·재정적자 해소가 목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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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은 이제 많이 성장했다. 그에 상응한 책임도질줄 알아야한다.』
워싱턴에서 만난 미통상대표부 (USTR)의 「피터·알가이어」부대표부는 한국이 농수산물에서부터 금융·광고·무역부문에 이르기까지 이제 모두 개방할때가 되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서두를 떼었다.
성장에 따른 책임의 내용을 그는 호혜주의에 입각한 상호시장개방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한국이 그동안 담배시장개방·지적소유권보호·관세인하등 괄목할만한 성의를 보였지만 경제성장수준엔 미흡한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미국시장은 결정적이다. 한국은 컴퓨터수출물량의 90%, 자동차수출의 75%, 통신기기의 60%를 미국에 내다팔고 있다. 상호주의에 입각, 한국의 개방은 당연한것이아닌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제 한국은 미국이 가장 원하는 쇠고기등 농수산물시장을 개방해야할 차례라는 얘기다.
그러나 광활한 미국대륙을 여행하면서 「알가이어」의 논리뒤에 담겨진 미국의 절박한 현실을 목격할수 있었다.
미주리·오하이오·일리노이·텍사스주를 여행하면 끝없이 펼쳐진 초원위에 수천마리씩 무리를 진 소떼들을 수없이 보게된다.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에서 만난 목장주 「존」씨(47)에게 소한마리를 키우는데 얼마나 원가가 드느냐고 물었더니 『들판에 널린 풀을 먹고 저절로 자라므로 언뜻 계산이 안된다』고 멋쩍게 웃었다. 그만큼 헐값에 키운다는 얘기다.
미국의 쇠고기값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지육1kg당 도매로 1천7백원선. 우리나라의 절반도 채 안되는 수준이다.
이렇게 싼 값으로 공급해도 미처 처분이 안돼 육류재고가 86년 13만6천t에서 87년에는 14만8천t으로 늘었다. 소사육두수는 무려 1억2백만 마리나 된다.
육류뿐만 아니라 소맥·옥수수·콩등 다른 농산물도 남아돌기는 마찬가지다. 올해는 한발로 옥수수·콩생산량이 26%나 줄었다고 야단이지만 미국농산물의 과잉생산구조에는 변함이 없다.
스프링클러를 가동하면 현재의 가뭄을 극복할수 있지만 농산물재고처분과 값인상을 위해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는 말도 들려올 정도다.
수출이 잘되면 별문제가 없지만 그것도 아르헨티나·호주등 다른 농업국들과의 경쟁으로 한계가 있어 재고는 쌓여만 간다.
쇠고기만 해도 풀만 먹이는 호주·뉴질랜드산은 지육 1kg당 1천1백원수준으로 미국산보다 6백원이나 싸다. 미국은 곡물을 먹여 품질이 우수하다고 하지만 고급쇠고기개념이 각국마다 다르고 취향도 다르므로 미국산 고급쇠고기가 경쟁력이 있다고만 할수없다.
실제 호주는 82년에 한국수입쇠고기의 99.4%, 83년에 91.3%, 84년에 60.1%를 차지했었다.
이처럼 다른 농업국들과의 심한 경쟁과 과잉생산에 따른 값폭락으로 미국의 농산물수출실적은 80년의 4백4억8천만달러에서 87년에는 2백78억7천만달러로 30%이상 줄었다.
미처 팔리지 않는 농산물, 팔리더라도 값이 너무떨어져 농민들이 보게되는 피해를 막기위해 미정부는 농산물최저가격제·휴경제를실시,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들어가는 예산이 80년의 35억8천만달러에서 85년에는 2백6억3천만달러, 올 예산에는 2백58억4천만달러가계상되는등 해마다 보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있다.
미국의 농산물 수출문제는 단순히 무역수지 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이처럼 재정적자 문제에까지 연결된 이면에는 이같은 미국내사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알가이어」미부대표부의 말대로 컴퓨터수출의 90%, 자동차수출의 75%를 미국시장에 의존하면서 우리네 농산물시장은 무조건 걸어잠그겠다는데도 무리는있다.
박동진주미대사도 시장개방문제는 미국의 사정을 감안, 신축성있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미국이 요구하는 시장개방이 미국의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측면을 갖고있다는데 있다. 자동차시장개방으로 한국에 상륙한것은 미제가 아닌 동독제였고 쇠고기시장 개방에도 미국보다 호주나 뉴질랜드가 먼저 군침을 삼키고 있다.

<워싱턴=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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