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인 색안경 끼고 본 것 부끄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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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워드와 인순이
하인스 워드와 어머니 김영희씨(오른쪽)가 6일 미국 대사관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혼혈인 가수 인순이씨(왼쪽)와 만났다. 김씨는 인순이씨와 30여 분간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면서 과거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한 듯 계속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인순이씨도 김씨의 사연에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사진=인터넷 고뉴스 제공]

한국계 미국프로풋볼리그(NFL) 최우수선수(MVP)인 하인스 워드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열린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혈통과 피부색을 기준으로 '우리'와 '남'으로 양분해 온 배타적 순혈(純血)주의를 극복하자는 자성의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 임관수(55)씨는 "우리 세대는 기지촌 여성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혼혈인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워드의 방한은 혼혈인 문제를 다시 한번 곱씹게 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경은(26.여)씨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반쪽의 조국'을 찾아온 워드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한국 사회의 혼혈인 차별 풍토를 시정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했다.

네티즌 사이에서도 혼혈인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고쳐 보자는 의견이 많았다. 한 네티즌은 "워드의 외모는 외국인과 같지만 친구처럼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색안경을 끼고 혼혈인을 바라봤던 게 부끄럽다"고 적었다. 흑인계 혼혈인인 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김준(20) 선수는 "혼혈인에게 희망을 주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 같은 여론은 '워드 열풍'을 열린 민족주의로 성숙시키는 촉매제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워드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혼혈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수그러들 경우 국내 혼혈인에게 상처만 남길 우려가 있다.

중앙대 신광영(사회학) 교수는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국제화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시민교육이 필요하다"며 "피부색.종교.이념 등에서 다양성과 차이를 포용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정책적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 국사교과서는 어린 학생 때부터 지나친 순혈주의적 가치관을 주입하고 있다. 교육부는 최근 "2009년부터 초.중.고 교과서에 '다인종.다문화'를 수용하는 내용을 담겠다"고 밝혔다.

워드를 따라 입국한 외신기자들도 국내의 워드 열풍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앤드루 샐먼 워싱턴 타임스 서울특파원은 "단일민족 국가를 강조하며 혼혈을 거의 사회 범죄시하던 한국이 워드에 열광하는 것은 긍정적 발전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오니시 노리미쓰 뉴욕 타임스 도쿄특파원은 "한국은 이미 다민족국가로 바뀌고 있고 급증하는 국제결혼이 이를 반영한다"며 "이런 추세를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한국인의 몫"이라고 조언했다.

워드 자신도 기자회견에서 "피부색이 다른 혼혈이란 주변의 멸시를 극복하는 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며 "피부색이 다르다고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되며 다른 인종이라도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우.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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