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동대문·신무문 … '담쟁이 습격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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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물 1호인 흥인지문(동대문)은 요즘 보강공사 중이다. 약한 지반 탓에 서북 옹성에 배부름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3일 찾아간 흥인지문 주변 바닥에는 지난해 뽑아낸 담쟁이가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보강공사를 준비하면서 제거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되살아난 담쟁이들이 옹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돌벽 틈에 뿌리를 내리고 봄기운을 받아 뻗어오르는 기세가 당당하다.

#2.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양쪽 담벽은 담쟁이로 덮여있다. 문루까지 뻗어간 흔적이 보인다. 담벽 기와 밑부분에서 담쟁이를 잘라냈으나 담쟁이가 붙어있던 자리에는 얼룩덜룩 반점이 흉하게 남아있다. 자리를 옮겨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청와대 맞은 편이다. 이곳에도 역시 담쟁이 줄기가 뻗어가고 있었다. 문 서쪽 벽면 50m 가량을 뒤덮었다.

경복궁 북문(신무문)을 덮은 담쟁이(右)와 흥인지문 돌 틈을 뚫고 나온 담쟁이(左). [박정호 기자]


석조문화재들이 담쟁이의 위협을 받고 있다. 당장 큰 피해는 없지만 방치하면 문화재 훼손이 불가피하다. 한국미술박물관 권대성 관장은 "광화문.동대문은 물론 서울성곽 일대 등에 담쟁이가 자라고 있다. 일부는 사람들이 심은 것들이다. 담쟁이가 무성하면 습기가 높아지고, 이끼가 끼면서 돌의 부식도 빨라진다"고 말했다.동북아식물연구소 현진오 소장도 "넝쿨식물이 부식하면서 미생물과 결합하면 문화재에 해로운 화학물질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적 10호 서울성곽 곳곳도 담쟁이로 뒤덮였다. 서울 청운동의 창의문(자하문). 옛 사소문(四小門)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간직한 이곳은 안팎의 모습이 판이하다. 내벽은 깔끔하지만 외벽은 담쟁이로 어지럽다. 어른 엄지손가락만큼 굵은 담쟁이 뿌리가 성곽 돌 사이에 박혀 있다. 주변의 석재가 훼손돼 작은 구멍도 생겼다. 혜화문(동서문) 일대, 서울과학고 주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일부 구간은 돌이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넝쿨식물로 뒤덮였다.

지방의 석조문화재도 피해를 입고 있다. 문화재전문위원 손영식씨는 "남한산성 등 지방 성곽문화재 보수공사는 절반 이상이 나무.담쟁이 등의 뿌리에 의한 것"이라며 "오래전부터 관계자들에게 담쟁이를 없애라고 권고해 왔다"고 말했다. 권대성 관장은 "부석사.미황사.송광사 등의 사찰 석축에도 담쟁이가 있다"며 "보기에 운치가 있다고 그냥 두면 심각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글.사진=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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