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신뢰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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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법의 성좌로 일컬어지는 대법관 13명이 국회동의를 거쳐 정식임명됨으로써 민주화시대의 새 사법부가 출범하게 됐다. 6·29선언에 이어 새 헌법과 새 정부와 국회가 들어서고 마지막으로 사법부마저 새로 구성, 이제 3부가 새로 자리잡게 되었다. 더구나 대법원 인선을 둘러싸고 몇차례 파동과 곡절을 겪였으나 이일규대법원장이 국민의 기대속에 취임했고 소신과 실력을 겸전한 대법관들이 사법부 수뇌로 앉게 된 것은 사법부는 물론 국민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다행한 일이다.
우리는 사법부의 수장을 놓고 진통과 파행이 거듭되고 사법부가 마치 정치의 흥정 대상인것처럽 비춰질 때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대법관 인선에 외부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고 무난한 인사로 구성된 것은 전화위복이란 느낌도 들게 한다.
새 대법원은 국민의 기대와 여망을 안고 출발하게된 만큼 사명 또한 무겁다. 따라서 그 들은 부여된 시대적 사명과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가부터 헤아려야 할 것이다. 그 것은 오늘의 사법부가 어떠한 위상과 위치에 놓여 있고 그렇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고 어디서 연유했는가를 성찰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새 대법원 수뇌진도 익히 알고 있겠지만 사법부가 정부의 시녀니, 정권의 뭐니하는 소리를 왜 듣게 되었고 걸핏하면 재판거부와 법정소란이 왜 일어 났는지 되새겨 보아야 한다. 눈치재판이 왜 성행하게 됐고 판사가 영장떼는 복사기라는 오명을 듣게 된 까닭도 다시 되씹어보고 과감한 수술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법부가 맨 먼저 해야할 과제는 잃었던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를 되찾고 국민의 사법부, 민주화시대에 맞는 사법부로 재건하는 일이다. 그런 사법부 독립을 확고히 하고 인권과 정의를 구현하는 사법부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은 법관의 독립수호가 첫 걸음이며 그 것이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가능케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법관의 신분이 위태롭고 불안정한 분위기에서는 소신 있는 판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어둡고 암울했던 그 시절에도 양심과 소신을 굽히지 않고 용기있는 판결을 내린 외로운 법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법관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끝내는 타의에 의해 법복을 벗거나 불우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새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과거와의 단절과 청산, 사법적 내부의 개혁 없이는 불가능하다.
새 대법원장도 밝혔지만 법관의 독립은 공정한 인사가 전제되어야 하고 그러한 인사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으로 구성된 인사위원회의 운용이 바람직하다.
인사위원회를 언제 구성할지는 모르나 이번 사법부 인사부터 그러한 취지와 정신이 반영되고 가능한한 재야법조인도 대거 기용했으면 한다. 이는 새로 구성된 대법관의 3분의1이 재야법조인으로 메워졌다는데서도 명분과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법관의 관료화를 부채질하는 현행 법관의 승진제도 개선과 예산편성의 독립문제, 법관의 타국가기관으로 부터의 독립을 저해하는 법관파견문제등도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다.
최종심 법원으로서의 대법원은 하급심을 구속하는 숱한 판례를 만들어 내는 사법부의 최고기관이기도 하다.
그러한 판례는 사회발전과 변화에 너무 민감해서도 안되지만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균형과 형평을 고르게 갖춘 진취적 판례여야 한다.
다행히 새로 임명된 대부분의 대법관들은 실력과 원만한 인격을 갖추었고 그 중에서도 재야경험을 가진 인사가 많아 기대가 크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새 대법원의 출범이 이나라의 법치주의를 정착시키고 민주화를 한걸음 앞당기는 거보의 계기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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