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된 상임위-이수한<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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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는 제142회 임시국회 의사일정에 합의하면서 해괴하게도 상임위활동을 의사일정에서 없애버렸다.
특히 야3당이 제13대 국회의 첫 임시회기에서 다수의 반민주악법을 개폐하고 지난해 정기국회이후 한번도 논의하지 못한 민생문제 등 국정의 주요현안을 심도있게 따지겠다고 별러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같은 합의는 자가당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법개정과 폐기는 상임위심사를 거쳐야 하기때문에 정기국회전에 임시국회를 한번 더 열지 않으면 그들이 그렇게 외쳐온 최소한의 시급한 「악법」개폐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기국회에서는 통상 예산통과 후 12월초에 법안을 처리하기 때문에 「악법」개폐를 6개월 미룬 꼴이다.
별로 명분도 서지않는 특위명칭 하나로 임시국회 회기 30일의 반을 허비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4당 원내사령탑은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긴하다.
딴은 그럴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대표연설 40분하고 금싸라기 같은 하루일정을 소진해 버리는 판에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더구나 여당측이 오전에 대표연설, 오후에 상임위활동의 의사운영 제의까지 했는데도 야3당 총무들은 이를 외면했다.
그렇게 되면 각당 총재들의 대표연설이 빛을 덜 본다는 얄팍한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진짜 이유가 그것이라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대표연설은 보통 각 당의 정국운영기조 또는 총재들의 정치철학을 밝히는 것이다.
각당의 중요정책방향이 제시되는 것인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4당대표가 하루에 모두 연설해도 안될 것이 없다.
국회가 「입법부」라는걸 조금이라도 인식했다면 야3당 총무들은 상황의 변경에 따라 능소능대하게 의사임정을 재조정, 최소한의 법안심사를 하는 성의라도 마땅히 보였어야했다.
대표연설을 빛내기 위해 40분 연설하고 하루를 허송하는 식으로 파행적인 국회운영을 한다면 과거와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묻고싶다.
특히 걸핏하면 여측의 지연전술을 비난만 해온 야3당 총무들은 여측의 지연전술에 짝자꿍해「야합」했다는 의혹을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법안심사를 하고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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