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물 '또디' 책으로 펴낸 만화가 정연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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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정연식씨(36.사진)가 스포츠신문에 연재중인 '또디'(애니북스.9천5백원)를 책으로 묶어냈다. 부제가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라서 요즘 유행하는 에세이풍의 얘기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1999년 데뷔 이래 정씨의 단골 캐릭터인 '또디'는 사람 앞에서는 귀염을 떨지만 내심으로는 사람 뺨치게 되바라진 강아지다. 그러나 사람과 개의 구별이 엄연한 탓에 해를 거듭할수록 또디는 '비중있는 조연'으로 밀려났고, 이제는 또디의 주인 '이팔육'씨가 단연 만화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30대 무명만화가인 '이팔육'과 '백숙'의 결혼생활을 비롯, 자잘한 일상에서 포착한 기막힌 웃음이 이 만화의 핵심이다.

30대 부부가 주연이라는 점에서 '또디'는 홍승우씨의 만화'비빔툰'과 비교할만하다. '비빔툰'의 주인공 '정보통'이 집안일이나 부인의 자기계발에 나름대로 신경을 쓰는 신세대 남편인 반면, 이팔육은 한국 '보통 아저씨'의 속내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휴일에도 집안일에 바쁜 부인을 만류하는가 싶더니 '이런 건 내가…'다음에 '출근하고 없을 때 하라'는 대사가 이어지는 식이다. 그러나 만화밖 세상이 실제 그렇듯, 소시민 가장 이팔육이 큰소리 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팔육의 동창이자 조직폭력배인 '정육점'역시 '형님'다운 권위보다는 궁색한 살림과 천진한 마음씀이 특징이다. 이런 남자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키득키득 웃음이 터진다.

그 덕분일까. 작가 정씨는 아줌마 팬들이 많아 극중에서처럼 실제로도 첫딸을 낳았을 때 기저귀.분유 선물까지 받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극중 이팔육과 정씨를 동일시하는 독자들이 많아 난감하기도 한 모양이다. 버스정류장에서 토큰을 줍다 두 남녀가 맺어지는 일화처럼 작가의 경험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소 노트에 빼곡히 적어놓은 아이디어를 가공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가까이 있고 소박한 것일수록 잘 돌보기 어렵죠. 정장보다는 캐주얼이 멋지게 입기 힘들잖아요. 하지만 그 속에 우주의 비밀이 있다는 걸 전 안답니다."

학생시절의 대학가요제 도전과 음악다방 DJ생활, 고향 부산에서 취직차 올라온 서울에서 첫 이틀간의 노숙, 그리고 광고회사에서 CF감독으로 6년을 보낸 끝에 만화가로 변신한 그는 아직도 하고픈 일이 줄줄이다. 딸같은 독자를 위해 동화책도 쓰고 싶고, 광고회사 입사 전부터 꿈이었던 단편영화도 찍고 싶단다. 어느 장르이든, '또디'에서처럼 세상의 업그레이드 속도를 따라가는 데 지친 소심한 사람들을 따뜻이 감싸안는 내용일 것 같았다.

글=이후남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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