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편법상속 비판하며 기업에 손 내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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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참여연대가 오해를 받고 있다. 주요 기업의 편법 상속 조사 발표(6일 예정)를 앞두고 기업들에 '참여연대 새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 초청장을 돌린 것이다. 참여연대의 위력을 알면서도 봉투를 들고 가지 않을 '간 큰' 기업은 없다. '오해'라기보다 적절한 타이밍을 잡은 참여연대의 기획력에 놀랄 뿐이다.

참여연대는 리모델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을 빼달라는 건물주의 입장을 헤아려 달라고 해명하고 있다. 1800여 명의 회원이 내는 1만~2만원의 회비로는 서울 도심에선 사무실을 구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사무실 이전을 위해 후원금 상한액을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올렸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후원금 한도액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시기 문제도 그렇다. 후원의 밤은 연례적인 행사이고, 편법 상속 조사는 법적 검토를 위해 발표 시기가 늦춰진 것이다. 그래서 공교롭게 칼을 들이대고 손을 내미는 꼴이 된 셈이란 해명이다. 사회적 비난에 대해 참여연대는 "일하는 사람들 힘 빠지게 하는 일"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사실 "오기 싫은 사람은 안 오면 될 것 아니냐"고 반박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초청장을 받은 기업들이 곤혹스럽다. '김재록 게이트'와 '현대차 검찰수사'로 뒤숭숭한 상황에서 편법 상속 조사를 강행하는 참여연대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500만원의 후원금 때문에 목숨을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계는 "이번 행사에는 협조하지 말자"고 해놓고, 돌아서면서 "미운털이 박힐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하소연한다.

참여연대가 12년간 우리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조사 대상 기업에 손을 내미는 것은 해도 너무한 일이다. 환경단체가 '환경 장사'로 망신당한 것을 잊은 모양이다.

오히려 시민단체는 창고 같은 사무실에서 더 큰 힘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일탈행위가 권력화로 치닫는 시민단체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