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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교육부, 대학별 전형 심사 사업선 5년째 '정시 확대' 언급조차 안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교육부가 "정시 비중이 너무 적다"며 현재 고교 2학년 대상의 대학입시에서 정시 비중을 확대할 것을 갑작스럽게 대학에 요구했지만 정작 교육부가 개별 대학의 입시 등을 심사해 정부재정을 지원하는 사업에선 정시 확대를 5년째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 차관이 일부 대학에 직접적으로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비정상적' 절차가 아니더라도 대학들의 대입전형계획 개편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있는데도 이를 한 번도 활용하지 않은 것이다. 교육부는 "정시 비중이 너무 높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뒷북'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3일 중앙일보가 교육부의 2014년 이후 올해까지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계획서를 살펴본 결과 대학들에 수시·정시모집 간의 일정 비율 유지 혹은 정시모집 확대 등을 권고하는 내용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업은 개별 대학이 고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 학생·학부모의 수험생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입시 제도를 개편하면 교육부가 지원금을 주는 사업이다. 올해는 65개 대학에 559억원을 지원한다.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엔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도 매해 응모하고 있다.

교육부 세종청사 전경

교육부 세종청사 전경

올해 사업 계획은 지난달 6일 발표됐다. 지난달 25일 교육부가 대학들에 관련 공문도 보냈다. 대학별 올해 계획, 그리고 2019학년도 및 2020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실시계획이 심사 대상이다. 고2 대상의 2020학년도 대학입학전형계획은 박춘란 교육부 차관이 개별 대학들에 직접 '정시 확대'를 요구한 계획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에선 대입 전형 단순화 및 투명성 강화, 대입전형 공정성 제고, 고교교육 중심 전형 운영 등을 심사한다. 교육부는 이 사업의 성과에 대해 "대학 자율인 대입 전형에 대해 학생·학부모 부담을 완화하고, 고교교육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대입의 지속적 개선을 유도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구체적으론 사교육 우려되는 논술 및 특기자전형이 이 사업 덕분에 감소했다고 밝히고 있다.

올해 사업계획에선 기여대학 선정 지표로 학생 서류 제출 부담 완화 노력 정도, 기출문제 등 대입정보 공개의 투명성 강화, 출신고교 블라인드 면접 노력, 부모직업 기재 금지, 입학사정관 신분 안정화 현황 등 20개 지표가 포함됐다. 하지만 평가지표나 사업계획서 어디에도 정시모집 비중 확대, 혹은 수시·정시모집 간의 적정 비율 유지 같은 내용은 없었다. 중앙일보가 이 사업이 시작된 2014년 이후의 매해 평가지표를 살펴보니 '정시 확대' 등에 대한 언급은 역시 없었다.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은 2010년 '입학사정관 역량강화 사업'으로 시작해 2014년 현재와 같은 방향으로 개편했다. 이 사업은 교육부가 대학에 대입 개편 방향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공식적 제도다. 이런 제도에선 정시 확대에 대해 그간 언급조차 없다가 대학별 2020학년도 대입전형계획 확정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 교육부가 "정시를 늘리라"고 압박한 셈이다.

10여년간 대학등록금이 동결되고 정부 압박으로 올해부터 입학금도 폐지 혹은 감축하기로 한 대학들로선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 대학 선정에 매우 적극적이다.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 대학 선정에 따른 정부 지원금으로 수시 전형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입학사정관 인건비와 전형 운영비 등을 충당한다. 교육부는 이 사업으로 지난해 62개 대학에 544억원을 지원했다. 교육부가 최근 직접 '정시 확대'를 요구한 서울대·고려대·경희대·중앙대·이화여대도 거의 매해 빠짐없이 이 사업에 응모해 선정됐다. 지난해 경우 이화여대만 최순실씨 딸 정유라의 체육특기자 선발 비리로 선정에서 배제됐다.

대학가에선 교육부의 이 같은 갈팡질팡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수년째 교육부가 대학별 전형계획을 심사하는 사업에선 정시확대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었고 2020학년도 계획에 대한 평가지표가 담긴 공문까지 보내놓고도 며칠도 안 지나 '정시 확대가 가능하냐'고 문의한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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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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