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기관의 한국인 차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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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의 눈길이 갈 닿지 않는 곳에서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뒤늦게 하나 둘씩 노출되고 있다. 바로 한국에 있는 외국공관, 상사들에 근무하는 한국인들의 처우문제가 그것이다.
우리는 「처우」라면 돈의 액수를 연상하기 쉽지만 주한 외국기관의 한국인 경우는 돈문제뿐 아니라 인권의 문제까지 포함된다.
정당한 사고력과 판단력, 그리고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을 정당하게 대접해 주지 않는 것이다.
가령 주한프랑스대사관은 한국인 직원들이 노조결성의 움직임을 보이자 노조측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직원에게는 소폭의 월급을 올려주고 대사관측의 입장에 선 근로자에게는 하루아침에 파격적으로 인상을 해줌으로써 한국인 직원 서로간에 불신과 불화를 조장해 주었다.
뿐만아니라 호봉제는 물론 가족수당 등의 복지제도와는 담을 쌓은 봉급체계를 강요하고 있다.
한편 외국인 은행과 회사의 한국인 차별대우는 더욱 다양하고 교묘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들수 있는 호주의 웨스트 팩 은행은 노조가 농성중인 사무실을 버려둔채 다른 호텔에 사무실을 차려 변칙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노조측과 아무런 협상을 벌이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때는 농성중인 사무실을 밖에서 잠가 사실상의 감금상태가 14시간 계속된 일도 있었다.
또 문제 은행의 책임자는 노조측의 요구사항이 적힌 대자보위에서 탭 댄스를 춤으로써 한국인 직원들에게 노골적인 모멸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영업활동을 벌여온 미국, 일본의 은행이나 회사들도 한국인의 승급을 막고있고 비록「디렉터」라는 지위까지 올라간다해도 아무런 실권을 부여하지 않는, 실제상 평사원과 같은 대우를 하고있음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여기에 덧붙여 미군 수사요원이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한국인의 퇴근 후 행적을 조사하기 위한 감시추적장치를 자동차에 부착한 사건도 있었다.
정작 여기 예시한 외국공관이나 상사들의 모국은 경찰마저 파업을 벌이는 나라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불쾌감은 더욱 높아진다.
최근 빚어지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한국인 차별대우와 노조탄압은 법리면에서나 자국민의 인권옹호라는 차원에서 우리 정부는 깊은 관심과 성의를 가져야 한다.
우선 빈협약41조에 따라 『외교사절은 접수국 법령을 존중』해야 한다. 한국인 직원들은 한국노동법에 따라 합법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정당한 이유없이 외국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선진국 기관」이라는 우월감 때문에 우리가 받게되는 민족적 긍지의 손상, 모멸감은 정부차원에서 합법적인 경로를 거쳐 합당한 조치가 있어야한다.
비록 노조가 결성되지 않은 주한외국인은행, 회사라 할지라도 선진 여러나라에서 널리 적용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의 규정인 「취업규칙」(Reglement interieur D'entreprise) 에 의하여 임금을 포함한 모든 근로조건개선이 근로자 대표와 타협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국제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는 법과 상식을 벗어난 주한외국인들의 부당한 행위가 그들의 양식에 따라 빠른 시일안에 개선될 것을 기대하면서 그들과 함께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들도 법과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행동을 보여줄 것을 아울러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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