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강경 목소리…온건론에 제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회광주사태 특위명칭에 대한 여야간 이견으로 6개 특위만 공동 발의되고 광주특위는 결국 여야가 각기 자신들의 안을 제출해 표결처리케 되었다.
이 협상과정을 지켜보면 민정당의 협상자세가 아리송하고 특위에 임하는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빤히 보이는 협상의 길을 피해 굳이 대결쪽으로 나가고 고의적으로 시간을 끄는듯한 인상을 주고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던 광주사태특위 명칭이 무슨 이유에선가 갑자기 쟁점으로 부각되더니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총무회담에서 민정당은 야당측과 광주사태냐, 광주의거냐로 다투다가 그 다음에는 광주민주화투쟁「의」문제진상조사라는 토씨「의」자 하나를 가지고 총무협상을 깼다.
그리곤 다시 민정당측이 스스로 제안했던 민주화「투정」이란 말을 써서는 안되며 민주화 「운동」이어야한다고 고집해 양쪽이 완전히 돌아앉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한 쪽은 주로 민정당이었다.
결국 민정당의 협상방침이 들쭉날쭉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내부적으로 협상에 제동이 걸린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5공화국의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 국회안에 특위를 구성해야한다는 주장이 야당으로부터 제기됐을 때 이 문제가 그렇게 쉽게 풀려나가리라 기대했던 사람은 별로 없다.
5공화국비리나 광주사태는 6공화국정권에도 결정적인 약점으로 부각될 소지가 있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정당은 개원국회 협상 때 의외로 선뜻 5개 특위구성에 합의해줌으로써 협상정국에 대한 기대를 한때 부풀게 했다.
이같은 결정을 한 배경에는 민정당의 사정도 있었다.
5공 비리나 광주사태문제는 야당이 이미 파헤치기로 공약한 사항일뿐 아니라 민정당도 양대선거에서 약속했던 사항들이다.
더구나 5공화국의 부담을 빨리 벗어버리고 내년봄으로 예상되는 재신임투표에 대비키 위해서도 이 문제를 서둘러 매듭지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가 흔들린 것 같다.
야권3당이 결속하여 정국을 주도해 보겠다는 의지가 여러곳에서 발견되면서 여권내부에서는 『이렇게 밀려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강경파의 목소리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신 야당과의 협상과 발상의 전환을 주창하던 온건한 목소리들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민정당의원 세미나에서 노재봉 교수의 발언에 대해 당직자들이 희미한 태도를 취한데 대한 성토, 박희도 전육군참모총장의 퇴역사에 대한 반응, 김대중 평민당총재의 통일론에 대한 성토 등 강경한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위명칭에 대한 마지막 협상 직전에 열린 21일의 중집위에서도 역시 강경론이 다수는 아니었으나 그 어조가 강하게 내비쳤다.
정호용 의원이 중심이 되는 강경론자들은 『광주사태를 보는 시각은 광주사람과 보다 많은 국민간에 서로 다르며 민주항쟁이니, 의거 등의 명칭을 쓴다면 다시 조사할 필요가 있느냐』며 당의 협상자세를 비판했다.
특위명칭을 둘러싼 이번 협상에서 민정당입장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단순한 지연책이나 힘의 과시라는 전술적인 차원보다 여권내부의 분위기가 바뀐데서 비롯된 근본적인 입장의 변화라고 읽는 폭이 합당할 것이다.
당내에서는 최근 국회상임위원장 등 요직 지명에서 비록 다선일지라도 온건인사들은 배제되고 강성이미지를 가진 인물들이 대거 발탁된 사실도 이런 당의 분위기가 반영됐기 때문으로 보고있다.
당내부에 구세력의 입김, 군출신 등 강경파의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고 봐야한다. 이런 가운데 민정당의 대야전략이 한 방향으로 모아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벌써 당내인사간에 틈이 벌어지고 있다.
군출신을 중심으로 하고 이를 추종하는 강경세력과 표면화는 안됐으나 이들과 거리감을 갖고 있는 측이 은연중 대립하고 있는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바람에 당의 지도노선이 불투명하고 흔들리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의원들이 당지도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회의를 보이고 있다. 『당이 앞으로 특위문제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아무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채 매일매일의 상황에 떠밀려 가고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당이 대책도 없이 강경론에 계속 끌려다니는 상황을 걱정하는 측도 많다.
특히 지역구 출신의원들은 최근의 민정당행태가 국민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걱정하고 있다.
민정당이 계속 강경론에 휩싸일 경우 앞으로 특위를 둘러싼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게 되어있다.<문창극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