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배짱 편한 서울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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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아파트 값을 잡겠다"며 '분양권 전매 금지'(5월 23일), '종합부동산세 부과'(9월 1일) 등의 조치에 이어 5일 '재건축 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지만 문제의 진원지이자 당사자인 서울시는 "나설 이유도, 자격도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가 아파트 재건축 기준을 강화하기 위해 내놓았던 조례안에 대한 태도가 대표적인 예다. 시의회는 지난 4일 재건축 기준 연한을 원안보다 4~6년씩 앞당기도록 수정.통과시켰다.

당장 재건축이 가능해진 아파트의 값이 하룻밤 사이 2천만~3천만원씩 뛰었다. 그런데도 서울시 관계자들은 "수정 통과는 의회의 고유 권한"이라며 "법적으로도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지방자치법 제19조는 "조례안에 이의가 있는 경우 자치단체장은 20일 내에 이유를 붙여 지방의회에 재의(再議)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지난해 '공영시설 보호지구 내에 교육원을 신설할 수 없다'는 도시계획조례안을 시의회가 '신설 가능'으로 수정하자 재의를 요구해 원안대로 통과시킨 적도 있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재의 절차가 있는 줄 몰랐다""우리는 할 만큼 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李明博)시장이 주재하는 간부 회의에서도 부동산 대책은 이번주에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재건축 조례안은 오는 17일 서울시 조례규칙심의회를 통과하면 22일께 공포, 시행된다. 서울시가 재의 요청권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정부 정책에 역행함은 물론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 같다.

양영유 메트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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