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올림픽평화를 깨려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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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큼 다가선 성하와 함께 서울올림픽이 바로 우리 눈앞에 다가왔다. 벌써 스타디움의 팡파르소리가 들리는듯 올림픽을 맞는 모든사람의 숨소리가 가쁘다.
끝없는 시련과 논란, 그 우여곡절끝에 이제 서울올림픽은 D-100일, 마지막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바덴바덴의 환호이후 8년-. 그동안의 준비과정을 지켜보노라면 마치 끝없는 장애물경기를 연상케한다. 끈기와 인고의 도전, 바로 그것이다.
12년만의 동서화합을 이루는 역사의 장이기에 국제정치의 장애물을 뛰어넘는데 그만큼 힘이 들었고 남과 북이 첨예하게 맞선 분단국이기에 호된 곤욕을 치러야했다. 여기에 더하여 이제 비로소 선진대열로 올라서는 개발도상국으로서 모든 의식수준을 끌어올리는데 그만한 무리가 따를수밖에 없었다.
「공산권보이코트」라는 큰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남북분산개최」라는 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고 집안에서는 일련의 민주화소용돌이 속에 논쟁과 시비가 그치지 않았다.
이땅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처럼 올림픽이라는 꿈을 이루기도 결코 쉬운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그렇게 어려울수록 우리는 서울올림픽을 인류역사에 남을 위대한 제전으로 만들어야할 책임을 느끼게된다.
1백일전 팡파르가 울리는 이 시점에 대학가 이곳저곳에서 화염병과 최루탄이 어지럽게 날고 있다. 그런가하면 미국과 소련, 그밖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서울에서의 동참과 안전을 다짐하는 이마당에 정작 잔치의 주인이 때늦은 남북공동개최논쟁에 휘말려 또다른 홍역을 겪고 있다. 참으로 어리둥절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도시 이제와서 공동개최문제를 들고 나온 이유가 무엇인가. 굳이 올림픽헌장이나 바덴바덴총회의 결의내용을 따질 것도 없이 현실적으로, 기술적으로, 더구나 시기적으로 이주장이 실현 가능하다고 믿고있는 것일까.
서울올림픽개최가 확정된 그 순간부터 북한이 어떤 반응과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지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진실성 여부를 판단할수 있을 것이다.
최근 북한측은 서울올림픽 참가를 타진하기위한 「사마란치」IOC위원장의 평양방문초청을 거부하고 또한 남북공동개최가 성사된다하더라도 서울올림픽에 불참할것이라는 입장을 밝힌것으로 외신은 전하고있다.
서울올림픽남북공동개최가 이땅의 통일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수 있다는 이론은 수긍할만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양쪽이 순수한 올림픽정신에 따라 조건없이 동참함으로써 한겨레·한핏줄의 정을 나눌수 있다는 대전제 아래서만 그러하다.
72년 뮌헨올림픽때 동독은 어떠한 트집이나 방해없이, 또 아무런 조건없이 장벽을 넘어선수단을 파견했고 서독인들은 뜨거운 동포애로 세계3위에 오른 동독의 선전에 갈채를 보냈다. 당시 공동개최는 말할것 없이 일부 종목 분산개최라는 제의조차 없었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할까. 공동개최의 경우 한마당 잔치가 아닌 두마당 잔치로 갈라져서 남북분단을 고착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IOC는 왜 서울을 올림픽개최지로 택했던가. 바로 분단국에서 비폭력 평화운동의 본보기를 보이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세계의 창에 비친 서울의 인상은 완벽한 올림픽준비라는 밝은면 못지않게 위험과 불안이라는 어두운면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부인할길이 없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올림픽의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려 하는가. 올림픽을 정치적 목적이나 투쟁수단에 이용하려는 것은 또 누구인가.
그동안 우리는 민주화의 과정에서 비싼 댓가를 치렀지만 올림픽을 위해 더이상 분란과 소요를 감수할수는 없다. 부질없는 논쟁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겨를도 없으며 국민적인 응집에 흐트러짐이 있어서도 안된다.
세계는 지금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한국경제의 도약, 정치의 발전, 그리고 민주화과정을 주목하면서 아울러 한국민이 서울올림픽을 훌륭히 치러낼수 있을지 시험할 것이다.
68년 멕시코올림픽은 반정부학생시위와 이로인한 사회적 혼란으로 2백60명이 사망하는 불상사와 계엄령속에서 치러졌다. 그 결과 경기에서의 많은 신기록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대회는 실패작으로 끝났다.
반면 72년 뮌헨올림픽은 아랍게릴라의 만행으로 17명이 숨지는 유혈참극을 낳았으나 그래도 대회는 질서 있고 짜임새 있는 성공작으로 평가받았다.
이제 88서울은 멕시코로 가느냐, 뮌헨으로 가느냐, 그것도 아니라면 빚더미만 남긴 몬트리올로 가느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그 어느것도 아닌 서울만의 자랑, 문화올림픽·화합올림픽·질서올림픽·흑자올림픽으로 역사의 새장을 만들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서울올림픽의 마지막 장애물을 뛰어넘기위해 국민적 지지와 호응보다 적극적인 참여가 따라야 한다. 그길만이 대회의 성공을 보장해줄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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