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으로 눌러 될 일 아니다|한천수<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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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10 남-북 학생회담」으로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당국의 원천봉쇄와 학생들의 결사강행 주장이 맞부딪쳐 심상찮은 분위기다.
남-북 학생회담은 사실 지난 3월말부터 대학가에서 나오기 시작했으나 그 동안 당국은 그저「애써 외면하려는」인상뿐이었다가 6월에 들어서야「통일논의는 개방하되 통일정책 추진 및 대북 접촉은 정부로 일원화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대학 총·학장 회의 등을 잇달아 여는 한편 경찰을 동원한 원천봉쇄에 나서면서 학생과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학생들의 6·10회담 주장이『건전한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통일문제에 관한 우리내부의 국론 분열과 사회 혼란 조장 및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는 북한측에 이용당하는 행동』이라며 자제를 촉구하고 있으나 학생들은 좀처럼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우선『「남-북간 각계 인적교류와 물적 교류를 실현해 나가되 북한측을 상대로 한 직접 접촉은 정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은 논리상 모순이며 기만적인 어구로 민중들의 통일논의와 구체적인 노력을 막고자 하는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특히『광주사태로 정권을 잡고 부정선거로도 34∼36%의 지지밖에 얻지 못한 현정권이 북한과의 교류를「독차지」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라고까지 주장한다.
또「통일논의는 실정법 테두리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단서는「독재악법」인 국가보안법을 계속 악용하겠다는 의도며 자신들의 반통일적 입장을 지지하는 세력들만의 교류로 한정, 애국민주세력의 교류를 차단하려는 저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당국의 입장과는 끝닿는 데가 보이지 않는 평행선이다.
무엇보다 국민적인 합의가 중요한 남-북 문제에서의 이 같은 시각 차이는 우려되는바 없지 않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학생들의 주장이 아무리 위험하고 무모하다 해도 그들도 국민의 일부인 이상 힘으로 밀어붙여 억눌러서만 될 일이 아니란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에 관한 한 정부는 좀더 일찍 국민적 합의에 의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일에 앞장섰어야 했고 지금이라도 그런 노력을 보여야 하며 학생들도 정부가 진지한 노력을 보일 때 받아들일 자세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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