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뜻 새기며 억척 18년|70년 산화한 김동완소령 미망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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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현충일인 6일오전 서울동작동 국립묘지. 70년4월동부전선 철책선부근에서 작전도중 부하가 실수로 밟은지뢰를 자신의 몸으로 덮쳐 중대원들의 목숨을 구하고 산화했던 김동완소령(당시31세)의 묘앞에 검은색 양장차림의 미망인 유성자씨 (49·서울시의약과가족보건계장) 와 용환 (21·한양대 전자공학2) 준환(단대부고3) 군등 세모자가 묘비앞에 노란장미꽃을 바치고 고개숙였다. 그 뒤편에서 거수경례를 올리는 20여명의 육사18기동기생들.
동기생들의 늠름한 모습에서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는 미망인 유씨의 눈에 만감의 눈물이 괴었다.
65년4월11일 결혼해 6개월만에 고강재구소령부대 부중대장으로 월남전에까지 참전했다가 귀국, 부하의 목숨을 구하고 산화한 「제2의 강재구」.
유씨가 남편의 비보를 접한것은 사고 다음날 서울대방동의 13만원짜리 단칸셋방에서였다.
유복자인 둘째를 낳기 3일전, 결혼5주년 기념일을 나흘 앞둔날.
충격으로 몸져 누웠던 유씨는 가까스로 둘째를 낳았다.
『두달쯤 기진맥진해 누워있다가 하루는 아기우는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왼쪽에 3살짜리 큰 애가, 오른쪽에는 갓난애가 누워있더군요….』
유씨는「내가 죽으면 이 아이들은…」하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둘째를 남은지 3개월만인 7월9일 유씨는 아이들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영등포보건소의 가족계획지도원(임시직)으로 취직,「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전남대의대부설 간호학교를 졸업, 서울한양여고 양호교사로 있던 경험을 살린 것이다.
그러나 시련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남편이 간지 4개월만에 막내가 심장벽에 구멍이 뚫린 심장중격막손실증으로 밝혀져 입원해야 했다.
보상금·조위금등으로 겨우 마련한 봉천동 산비탈의 13평짜리 주택을 치료비로 날리고 다시 전셋방을 전전해야했다. 밤이면 잠을 못이뤄 울어대는 둘째 때문에 71년에는 무려 6차례나 주인집에서 쫓겨나는 설움을 겪었다.
그러나 유씨는 억척스럽게 시련과 싸웠다. 밤잠을 설쳐가며 공부해 서울대보건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청년에는 제3회 「영나이팅게일상」을 수상. 유씨는 이때까지 「주위의 값싼 동정을 받을까봐…」남편이 전사한 사실을 숨겼었다.
78년 5월에는 사무관(5급) 승진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82년 가을에는 셋방살이17년만에 내집을 마련 (23평아파트) 했다.
남편이 육사졸업 기념반지 하나만을 남긴채 한줌의 흙이된지 18년-. 유씨는 그동안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가장 보람스러운 것은 두아들을 탈없이 키운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준환군은 그동안 여러차례 위험한 고비가 있었지만 어엿한 고3으로 키워냈다.
이제는 다자라 자신보다 키가 두뼘이상 큰 두아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눈물짓는 유씨. 국립묘지를 나서는 세모자의 모습에서 자랑스런 군인가정의 인간승리를 보는듯했다. <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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