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자료를 내놓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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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간에 민감한 쟁점이 되고 있는 구속자 석방 문제가 어떻게 풀려나갈지 짐작을 하기 어렵다. 야권 3김씨가 양심범 석방을 요구하면서 정부가 안 받아들일 경우 특별 입법도 불사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고, 이어 1처 3김의 청와대 4자 회담에서도 이 문제는 중요한 의제였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문제되고 있는 시국 사범이야 당 주장처럼 「양심범」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개준의 정이 있는 사람의 「최대한 석방」이 이뤄지도록 검토시키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여당 내에는 최근 이 문제에 대한 태도가 경화되는 조짐이 보이면서 당분간 구속자 석방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권의 이같은 태도는 노 대통령의 「최대한 석방」 노력 발언뿐 아니라 그동안 주장해온 「선별 석방」 방침과도 크게 다른 것이어서 도대체 이 문제에 관한 여권의 진의가 무엇인지 어리둥절케 한다. 그리고 이 문제가 다시 여야간에 시비 거리로 등장해 4자 회담과 순조로운 국회 개원을 통해 이룩된 정국의 안정감을 손상케 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구속자 석방 문제를 보는 여야의 시각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그러나 여야가 다같이 인정하고 있다시피 청산해야 할 구시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구시대적 상황의 산물로 발생한 시국 사범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구속자 석방 문제는 구시대 청산 노력의 하나로서, 또는 새 시대 민주 화합의 한 표현으로 당연히 제기되는 명제임은 어김없는 일이다. 석방 기준과 그 대상자의 선별이나 숫자에 있어서는 입장에 따라 이견이 있겠지만 제6공화국 초기에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일의 하나임은 분명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권은 단순히 실정법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보수적으로 다룰게 아니라 청산과 화합이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다는 적극적인 대처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 이 문제가 이미 민감한 정치 현안이 되고 있는 이상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야 할 정국을 굳이 이 문제에 대한 경화된 자세로 긴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서도 안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날 많은 시국 사건은 도덕성, 정당성, 신뢰성에 대한 갖은 시비를 유발했던 수사, 소추의 과정을 거친데다 독립성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은 재판을 받았었다.
또 적용된 법률 중에는 오늘날 악법 시비의 대상이 되어 멀지않아 개폐가 불가피할 법률도 있는 실정이다. 구속자 석방 문제를 다룸에 있어 여권은 이런 점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고 본다.
석방을 요구하는 야당들은 주장의 엄밀성에 각별히 유의해야할 것이다. 석방 대상자로 내놓은 명단 중에 이미 석방된 사람도 끼여있고 도저히 시국 사건이라고 볼 수 없는 간첩 사건도 포함돼 있다는 지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석방 대상자의 선정 기준은 당의 노선이나 정책과도 부합돼야하고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사건 내용과 구속자들의 실상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다르게 알고 있거나 잘못 전달 된데서 오는 시각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정부측은 구속자 문제의 실상을 솔직이 밝히는 자료 제공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 문제의 정쟁화를 피하고 시대적 상황이 빚은 희생자들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당국·여·야의 실무자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과 구속자 실상을 공동으로 검토하고 의견을 교환하여 합의를 시도하는 노력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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