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블로그] 美 "뒷마당 남미 접근 금지" 中에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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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미국의 맞수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입니다. 1인당 소득 수준이야 중국이 1400달러 선으로 미국(3만8000달러)과 비교가 되지 않지만 요즘 국력의 주요 기준인 인구로 보면 중국은 세계 최대 시장입니다. 중국 인구는 13억을 넘어섰고 미국은 이제 3억에 육박학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시장은 이미 안정기에 접어든 반면 중국은 모든 부문에서 한창 팽창 중입니다.

중국은 아직도 공산주의 1당 독재를 유지하면서 사회주의 세계의 맹주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반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전세계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확산을 위해 행정부와 군사력을 적극적으로 동원하고 있지요.

4월 20일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워싱턴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인 가운데 최근 두 나라 관계를 껄끄럽게 만드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중국의 남미 접근입니다. 중국은 성장의 필수 조건인 에너지원 확보와 새로운 시장으로서 남미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후 주석은 그 중에서도 반미의 선봉에 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가깝게 지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게 부시 대통령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구촌의 두 수퍼 파워는 4월 둘째 주 베이징에서 이 문제를 놓고 대화를 가질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미국은 국무부의 토머스 새넌 중남미 담당 차관보를 베이징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중남미를 자국의 '뒷마당'정도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식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정책이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를 오히려 더 키웠다는 비판이 이 지역에서 확산하면서 미국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극단적 반미주의자인 차베스 대통령과 올 초 취임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그런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고 있는 주인공입니다. 쿠바,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도 '반미 벨트'에 동참하려는 조짐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중남미에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자 미국이 견제에 나선 것입니다. 중국은 중남미와 에너지 협력사업을 앞세워 외교, 군사 등 여러 분야로 협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은 세계 제5위의 원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 동부의 원유개발권을 따냈습니다.

최근 몇년간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급등한 구리의 안정적인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칠레와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자원개발회사인 오광집단공사는 지난해 앞으로 15년간 칠레 구리광산에 20억 달러를 투자하고 구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중국은 올 여름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도 앞두고 있습니다.

중국은 최근 브라질산 유전자 조작 콩에 대한 수입을 5년간 연장하기로 하는 등 브라질과의 경협도 크게 늘려가고 있습니다. 3월 하순 중국을 방문한 알렌카르 브라질 부통령은 중국 정부와 농축산물 수입 문제를 논의했으며, 두 나라 경제당국은 매년 장관급이나 차관급 수준의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경제 협력과 관련, 남미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에 대해 미국이 공개적으로 비난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군사적 협력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중남미 국가의 장교와 사병들이 중국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으며, 중국군 장비의 중남미 배치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중남미 지역을 관할하는 밴츠 크래덕 미군 사령관은 3월 14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나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미국은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통과된 올해 국방비 규모가 전년보다 약 15% 늘어나는 등 매년 두 자릿수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 경계하고 있습니다. 중국 자체의 군사력 증대도 못마땅한데 중남미 국가에 무기까지 팔면 묵과하기 곤란하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과 베네수엘라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것과는 정반대로 미국은 지난해 35년 간 지속됐던 베네수엘라와의 군사협력 관계를 종결했습니다. 사실 요즘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주요 적국으로 변했습니다.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겁주기 발언을 올 들어 벌써 몇번이나 했습니다. 이 나라는 현재 미국 석유 소비의 15%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차베스가 대미 석유수출을 단 며칠만 중단하면 미국은 물론 세계 석유시장은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 분명합니다.

미국내 일부 수주의자들은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제2의 쿠바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직은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차베스가 진짜 석유 공급을 중단하면 양국간 전쟁 상황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문제가 더 악화하기 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어느 나라와도 경협과 무역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3월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과 남미의 관계 발전은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지 어떤 정치적 색깔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해를 끼치려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경계와 불만을 염두에 둔 발언입니다.

한편 미국이 중남미 문제를 놓고 중국과의 대화 시기를 4월 둘째 주로 잡은 것은 후진타오 주석의 미국 방문에 앞서 양국간 현안을 정리하기 위한 것입니다. 방미를 앞둔 후 주석은 최근 반체제 인사를 석방하고, 세계 불교인 대회를 개최키로 하는 등 대미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런 때 중국과 협상하면 자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심상복 기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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