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시대 내가 겪은 남산] 저항과 투쟁의 상징 '남산 안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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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암울했던 1970~80년대 '남산 안기부'는 공포 정치의 대명사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장도 없이 끌려가 심신을 망가뜨리는 고문을 당한 끝에 간첩으로 둔갑됐고, 음지에서 번득이는 사찰의 눈은 지식인들의 '내면'까지 검열했다. 압도적인 폭력에 관한 음험한 풍문은 시대의 어두운 뒷배경이었다.

남산 안기부의 폭력은 소설가와 시인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고은.조태일.김지하.양성우.이문구.천상병.송기원.문익환.황석영.이호철씨 등 숱한 문인들이 '붓끝을 잘못 놀린 죄'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최근 서울시는 민자를 유치해 남산 안기부 건물을 유스호스텔로 개조, 2005년 문을 여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남산을 사랑하는 시민 모임'과 중구청 등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남산 안기부 건물은 95년 국정원이 내곡동으로 이사간 후 시정개발연구원 청사 등으로 쓰여 왔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인권운동사랑방 등과 함께 "남산 안기부 건물을 유스호스텔로 개조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72년 중앙정보부 사무소로 시작, 20년 넘게 이어진 '남산의 역사'는 고스란히 한국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역사이고, 안기부 건물은 민주화를 위한 저항과 투쟁의 상징 공간이기 때문에 '역사체험 교육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기념관, 중국의 난징(南京) 대학살 기념관, 일본 히로시마의 평화기념관과 같은 역사 교육의 장이자 관광 명소로 꾸미자는 지적이다.

중앙일보는 작가회의와 함께 남산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문인들이 털어놓는 '내가 겪은 남산'을 8회 가량 연재한다. 안기부 건물의 활용방안이 어떤 식으로 결정이 나든 작가들의 붓을 통한 남산의 역사 되짚기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섬세한 붓끝은 남산 지하 취조실의 생생한 체험을 전해줄 것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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