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묘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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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양정 고진의 교무실에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수신인은 김교신 교사. 겉봉을 뜯으니 서툰 글 솜씨였다.
『…지난 5년간을 회고하니 아무 것도 인상에 남은 것이 없고 다만 선생님에게서 꾸중듣고 매맞은 것 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셨으면 이놈은 아마 학교도 못 마치고 부랑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졸업할 때 선생님 덕택으로 제일 꼴찌로나마 졸업장을 받았고 또 다른 친구들은 못 받은 회초리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회초리를 시골에 보관해두고 번뇌가 심할 때는 꺼내보곤 합니다.
1927년 함석헌씨 등과 더불어『성서조선』을 창간, 젊은이들에게『산촌으로 가라, 거기 나무꾼 한사람을 위로함으로써 너의 사명을 삼으라』는 창간사를 썼던 김교신은 일생을 평교사로 보낸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 김교신 교사의 일기장에는「가장 잊을 수 없는 제자」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적혀 있다. 두번씩이나 퇴학을 당하고도 따끔한 회초리를 맞고 간신히 꼴찌로 졸업한 제자. 그가 시골서 농사를 지으며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가 사회적 명성을 얻은 제자였더라면 오히려 잊을 수 없는 제자가 못 되었을 것이다.
예나 이제나 남을 가르치는 스승의 자리는 힘들고 어렵다. 오죽했으면 당·송 8대가의 한사람인 한유가 그의『사설』이란 글에서『아아, 사도가 이미 전하여지지 못한지 오래구나』하고 한탄했겠는가.
더구나 요즘은「사도」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조심스런 세태가 되었다. 스승의 자리가 여간 잘해서 존경을 받기는 어려운 반면 조금만 잘못하면 비난과 규탄이 빗발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있었던 각종 교권 침해 사건 중 학부모에 의해 일어난 것이 47%, 행정기관에 의한 것이 30%나 되었다. 또 지난해 교련이 접수한 45건의 교권침해 사건 중 80%가 사립학교에서 일어났다. 신분피해는 86년의 65·5%인데 비해 82·2%로 늘어났다. 스승의 자리는 갈수록 어려운 길임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그러나 위대한 교육자「페스탈로치」의 묘비용을 되새기며 이번「스승의 날」을 보내자.
『…모든 것을 남을 위해 바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그 이름에 은혜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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