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대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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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엔 작년 통계로 1만4백51종의 직업이 있다. 74년 경제기획원 한국 표준직업 분류표에 나타난 1천5백32종보다 무려 8배나 늘였다. 산업발전에 따른 직업의 전문화, 세분화가 빚은 필연적인 현상이다.
국민소득이 3천달러 쯤 되니까 이제는 별의 별 직업이다 있다. 가령 시계 하나 만드는데 2백12개의 직종이 참여한다. 문자판을 만들려면 공명공, 손질공, 광택공, 무늬작업공 등 18개 직종의 손을 거쳐야 한다.
「큐레이터」라면 관리자나 지배인이라는 뜻인데, 하는 일은 미술관 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하는 것이다. 이들 역시 우리 나라에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하는「원격 연구원」「얼음 조각사」같은 직종도 전에 없던 분야다.
사회는 그 정도로 다양해졌다. 문명사회와 비 문명사회를 구별하는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국민소득이 얼마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고 전문직종이 얼마나 많으냐하는 것이다. 기술문명이 첨단기술 세계로 옮겨가면서 직업의 세분화와 다양화는 더욱 촉진되고 있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 가까운 미국의 경우 2만3천5백59종의 직종이 있다. 우리 나라의 두배도 더 된다. 바로 그런 나라에서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모두 각자의 전문성을 서로 존중해 주며 누가 무슨 일을 하든 그 분야에서 성실하고 남보다 뛰어나면 그것이 바로 직업인으로 대접받는 길이며 긍지도 된다.
미국의 경영학자「P·F·드러커」는 전문직 고용인의 5가지 요건을 제시한 일이 있었다. ①전문직으로 기업에 공헌해야 한다. ②승진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③업적에 대한 재정적 격려를 받아야 한다. ④그의 일은 어디까지나 전문직이어야 한다. ⑤그 조직 안에서 전문인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문명사회란 결국 다종, 다양한 전문인들이 자기 몫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우리 나라도 지금 한 발짝씩 그쪽으로 가고 있다.
요즘 서울시립 국악 관현악단원들이 푸대접을 시정해 달라고 농성을 하고 있다. 양악 단원들에 비해 1백대 65의 대우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양악과 국악에 대한 관리들의 몰이해도 있겠지만 똑같은 전문직을 놓고 차별을 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국악 단원들이 소리 지를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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