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중국 도덕운동 '팔영팔치'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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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9시 중국 베이징(北京)시 둥청구의 옛 정부 부지. 초등학생 100여 명이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다. 역사 현장 학습 시간이다. 1926년 여기서는 반일 학생운동이 당국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혔다. 인솔 교사의 설명이 끝나자 학생들은 일제히 합창을 시작했다. "우리는 중화의 착한 소년들, 조국사랑의 선두에 선다…."

앳된 목소리답지 않게 내용은 장중했다. '영욕을 알고, 사람됨을 배우며, 조국의 훌륭한 소년이 되자'는 제목의 새 동요였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4일 제10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 제4차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에게 연설한 '사회주의 영욕관(팔영팔치.八榮八恥)'이 열흘 남짓 만에 동요로 탄생한 것이다.

장면 #2

18일 오전 10시 베이징시 차오양구의 한 아파트 단지. 수백 명의 대학생이 단지 안으로 몰려들었다. 베이징 사범대학, 베이징 과기대학, 베이징 공업대학의 학생들이다. 이들은 지나가는 주민을 붙잡고 후 주석의 영욕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엉거주춤 멈춰 서서 이들의 강의를 들어야 했다.

장면 #3

19일 오전 9시 베이징 과기대학 농구장. 화공학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팔영팔치 학습책'을 나눠주고 있었다. 강의실에서는 각 과 주임 교수가 모여 학과별로 '팔영팔치'에 부합하는 과훈(科訓)을 만들어 곧 발표대회를 열기로 결의했다.

장면 #4

14일 베이징 내 스지칭중신 초등학교. '팔영팔치 포스터전'이 열렸다. 학생들은 "영욕관의 참뜻을 가슴 깊이 새겨 중국 소년의 새로운 이상형을 만들자"고 외쳤다. 지도 교사는 "팔영팔치를 눈에 넣고, 귀에 넣고, 머리에 넣고, 가슴에 넣어 기필코 '소년군자'를 쟁취하자"고 역설했다.

최근 중국에선 '팔영팔치 열풍'이 불고 있다. 우선 각급 학교에서 바람이 일기 시작해 주변 지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후 주석이 강조한 새로운 정신 재무장 운동인데 조국사랑.인민봉사.과학숭상.근검.상부상조.성실신의.준법정신.분투노력 등 8개 항목이 적극 실천해야 할 덕목(팔영)이다. 이에 반해 조국배신.인민배신.무지몽매.무사안일.이기주의.물질만능.위법.사치방탕은 배격해야 할 8가지 항목(팔치)이다.

이런 도덕운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일사불란함이다. 초등학생까지 동원해 토론회도 벌인다. 상부의 결정사항을 신속하게 전파하는 중국 공산당의 힘은 아직도 이처럼 막강하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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