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학술재단 논문심사 때 최소점수제 도입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중앙일보 3월 13일자).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의 평가제도 역시 이런 현상을 줄이기는커녕 방관하거나 부채질하고 있다. 자연계열의 경우 학진의 과제 신청시 논문의 저자수에 관계없이 최근 3년 이내 학진 등재(후보) 또는 SCI급 3편 이상이면 신청 가능하고, 그중 3편의 대표 논문만 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특정 논문에 아무리 많은 저자가 포함돼 있어도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대표논문의 공동저자가 그 과제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경우도 있어 공동저자를 많이 올릴수록 이익을 보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과제신청 자격과 관련해 논문 편수가 아니라 최소점수제를 도입하면 이런 문제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점수계산에 있어 저자수와 논문저널마다 부여돼 있는 영향력지수(impact factor)를 고려해 좋은 논문저널에 게재된 논문일수록 점수가 높아지고 저자수가 많을수록 점수가 줄어들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점수계산 공식을 '(최근 3년 이내 3편의 대표 논문/저자수)*영향력 지수'로 하되, 일정 점수 이상인 경우에만 과제 신청 자격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논문의 저자수 끼워 넣기가 상당히 줄어들고, 논문의 질적 측면(영향력지수)을 일부 고려하게 되므로 지금보다 훨씬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 이 경우 학문 분야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자연계열의 경우 점수가 1.5 이상(3년간 학진 등재 단독 3편 정도) 되는 사람에 한해 신청 자격을 주어야 한다.

최소점수제 도입과 관련해 SCI에 등재되지 않은 국내 저널에 대해서도 영향력지수를 부여하는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학진 등재 저널은 0.5, 등재 후보 저널은 0.4 정도 부여하는 것이 적절하다. 최근 자연계열의 많은 국내 논문들은 학진 등재 저널보다 훨씬 가치가 떨어지는 학술발표를 통한 SCI 게재 논문(일반적으로 내용심사가 없음)으로 몰리고 있어 자연계의 국내 저널은 논문집 발행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몇 년 전 미국의 대학 도서관을 방문해 보니 그들은 일본기계학회논문집을 구독하고 있었다. 이젠 우리도 세계적인 학술지를 육성해야 할 때다. 다른 사람의 논문에 무임승차하는 교수들의 도덕 불감증만 탓할 것이 아니라 국가연구지원기관부터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광호 상주대 교수·자동차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