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푸들 외교'에 역풍,“트럼프 선택 100%지지가 말이 되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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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세계에 있어서, 설사 외교의 세계가 아니라고 해도 ‘내가 당신과 100% 일치한다’는 말은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안 하는게 낫지 않겠나.”
8일 열린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혼다 히라나오(本多平直)의원이 고노 다로(河野太郞)외상을 이렇게 몰아부쳤다.

日야당 "北공격하든 日배신하든 뭘 해도 100% 찬성할거냐" #아베 일방적인 美밀착에 일본 사회와 정치권서 거부감 #미국 핵보고서 놓고도 "높이 평가","유감" 오락가락 #트럼프와의 통화 횟수와 통화 시간이 미일관계 척도?

지난해 11월 6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만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6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만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100% 일치한다는 건 이쪽으로 저쪽으로 (양 극단으로)모두 다 (무조건) 일치한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을 선제 공격하든, 반대로 미국이 일본처럼 북한과 거리가 가까운 국가의 핵 위험은 팽개치고 원거리 핵만 중단하라고 (북한에)말한다면 일본에게 큰 문제가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어 “그런데도 일본이란 나라의 총리와 각료들이 매일 (트럼프의 선택과)100% 일치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게 말이 되느냐. 미국이 선제공격을 감행하든, (반대로)일본을 배신하고 북한과 함부로 연계하든 전부 100% 일치한다는 말이냐”고 쏘아붙였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그 피해는 일본 등 주변국들이 고스란히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트럼프가 무슨 말을 하든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아베 총리의 처신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해 11월 6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악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6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악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AP=연합뉴스]

수세에 몰린 고노 외상은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미국이 유엔헌장을 위반하는 행동(공격)을 취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가정을 전제로 한 질문에 답변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혼다 의원은 “북한이 그 어떤 폭발(공격)을 하지 않더라도 선제공격, 아니면 선제 공격과 그 비슷한 조치를 미국이 취하지 않는다는게 분명하냐”며 고노 외상을 계속 몰아세웠다.

혼다 의원의 질문엔 아베 총리가 내걸고 있는 대미 밀착 외교에 대한 정치권과 일본 사회 일각의 우려가 투영돼 있다. “일본은 미국과 언제나 100% 함께 한다”,“북한에 대한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위에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온 아베 총리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아베 총리의 '구애'에 가까운 행동은 숱한 해프닝과 논란을 만들어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에 뉴욕의 트럼프 타워로 그를 찾아간 장면, 또 지난해 11월 두 사람의 골프 라운딩중 벙커에서 굴러 떨어진 모습이 상징적이다.

트럼프와의 골프 회동 중 벙커에서 넘어진 아베 신조 총리 [도쿄 TV 캡쳐]

트럼프와의 골프 회동 중 벙커에서 넘어진 아베 신조 총리 [도쿄 TV 캡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앞)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5일 오후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에서 서로 주먹을 맞대는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앞)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5일 오후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에서 서로 주먹을 맞대는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리가 이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으니 외무성을 비롯한 일본 정부 전체가 휩쓸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핵태세보고서(NPR)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가 큰 논란을 낳은 것도 마찬가지다. 핵무기 능력을 강화하겠다는 골자의 보고서에 일본 외무성은 당초 "높이 평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자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의 외상이 어떻게 핵무기 사용을 확대한다는 데에 찬성하느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결국 고노 외상은 “해당 보고서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건 유감"이라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일 밤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한 시간여에 걸친 전화 회담이 끝난 뒤 일본 정부관계자와 기자들 사이엔 이런 대화가 오갔다.

^기자="지금까지는 두 사람이 52분간 통화한 게 가장 길었는데, 이번이 더 긴 것 아닌가."
^정부 관계자="내가 보기엔 가장 길었던 것 같던데, 확인해보겠다.(실무자의 자료 확인 뒤)아, 맞다. 지금까지들중 가장 길었다. 전체가 1시간 3분이다, 23시 4분에 끝났고…."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자신과 6차례나 정상회담을 했고, 20번 가깝게 전화 통화를 했다는 걸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이때문에 트럼프와의 통화 시간이 얼마나 길었고,얼마나 자주 통화를 하는지가 일본내에선 미ㆍ일 동맹의 강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된 듯한 분위기다.

미국과 일본 지도자들간의 밀월관계는 이전에도 있었다. 서로를 ‘론’, ‘야스’라고 호칭해 ‘론-야스 시대’로 불렸던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조합이 있었다. 또 일본의 총리가 미국 대통령과 기자들 앞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부르는 등 ‘일본은 미국의 푸들’이라고까지 불렸던 2000년대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양국의 역사속에서 지금이 가장 강한 동맹관계"라며 트럼프-아베 조합이 역대 최고라고 자신하는 모습이다.

7일 도쿄에서 회담한 마이크펜스 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연합뉴스]

7일 도쿄에서 회담한 마이크펜스 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과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9일 평창으로 떠나기 직전에도 기자들에게 “미국과 일본은 100% 함께한다는 걸 (지난 7일 회담에서)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확인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와의 친분을 외교성과로 내세울수록 '아베식 푸들 외교'에 대한 일본내 거부감도 조금씩 더 커지는 모습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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