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예상…한-미 통상 협상|서울서 내달 2일부터 양국 무역 실무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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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코앞에 닥친 한미 통상협상이 총 선에 따른 정국의 판도 변화로 인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주목거리다.
5월 2일부터 서울에서 시작되는 한-미 무역실무회의는 총선 결과에 상관없이 시기적으로 선거가 끝난 직후에 잡혀진 일정이라는 점에서 양국 나름대로 잔뜩 기대와 부담을 유보시켜 왔던 터였다.
우리 쪽에서는 미국 측의 난처한 요구를 총선을 이유로 좀 더 미뤄 달라는 전략을 써 왔고 미국은 미국대로 그런 입장을 감안해 주는 대신 몰아서 요구하겠다는 심산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 하나는 양측 정부 당국자 모두가 이번 총 선에서 여당이 으레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전제했었고 따라서 통상 협상의 과정이나 결과 면에서 한국의 의회가 앞으로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 마당에서 이 같은 전제가 뒤엎어진 것이다.
우선 정부의 개방 스케줄에 반대해 온 여론이 득세할 것이 뻔한 노릇이니 우리 정부 스스로도 기존의 통상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됐다.
더구나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문제들은 이 같은 여론의 차원이 아니라 통상 마찰과 관련된 입법과정에서 생겨날 실제적인 마찰들이다. 담배문제들을 포함해 미국 측의 요구를 수용하려면 기존 법을 고치거나 새로운 법을 국회에서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되겠느냐 하는 점이다.
한마디로 여태까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대목들이었다. 85년 물질 특허의 소급적용 내용을 토론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관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었던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이제는 야당의 목소리가 더 커진 상황이니 오히려 통상 정책의 주도권은 상당부분 야당의 손에 넘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야당이 정부 정책과 상치되는 법안을 만들었을 경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여당이 3분의 1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대통령 거부권을 다시 뒤집기는 현행법상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어쨌든 종래와 같은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결정이나 속전속결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당장 총선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무역 실무회의에 참석할 미 대표단에게 주한 미국 대사관을 통해 총선 결과에 따른 여건변화」를 미리 알리면서 서울회의에서 예상되는 분위기를 전달했을 정도다.
『미국 측의 반응은 어떤가』라는 질문에 관계 당국자는「노코멘트」로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 거리는 역시 농업부문의 수입개방이다. 이번 회담에서도 미국 측은 농산물 수입 개방을 첫 번째 표적으로 삼고 있다. 전략 면에서도 종래의 소매 상식의 개별품목별 요구대신 아예 도매상식의 포괄작전으로 바꾸었다.
이에 반해 두 차례의 선거를 치르면서 국내의 농산물 보호 정책은 표와 연결되면서 더욱 지지기반을 넓혀 왔으며 특히 야당 쪽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농산물을 둘러싼 한미 통상마찰은 한층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들 공산이 커진 셈이다.
물론 종래의 통상정책이 일부의 개인적인 착상이나 행정부의 일방적인 판단, 또는 정권 적인 차원에서의 정치적 약점 때문에 때때로 왜곡되었다는 점에서는 다수 야당의 견제 력 확보는 새롭게 기대할 수 있는 개선효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국이 당면하고 있는 통상마찰을 여하히「기술적」으로 물어 나갈 것이냐 하는 차원에서는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선 기존 통상정책에 대한 폐쇄성부터 시비 거리로 등장할 것이다. 그 동안 워낙 쉬쉬해 온데 대한 당연한 반발이겠으나 그 바람에 국제 협상자체가 지닐 수밖에 없는 공개 토론의 한계마저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날 것이다.
특히 협상 기술면에서 득을 키우고 실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책 결정의 타이밍이 결정적인 요소인데 과연 국회의 여과 과정에서 정책실기의 문제를 여하히 소 화 해낼 수 있을까 도 주목거리다.
따지고 보면 정부도, 국회도 국가이익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통상마찰문제에 대해 서로 터놓고 의논해 가며 정책을 생산해 본 경험이 여태껏 없었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근본요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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