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 총 선의 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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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26총선 결과는 충격적이다. 사상처음으로 여당이 과반 의석 획득에 실패했으며 야당판도가 역전되고 원내 4당 체제가 확립되었다.
무엇보다 놀랄 만한 일은 치열한 지역감정의 재확인이다. 우리사회의 지역감정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선거에서 보게 되는 지역의식의 강력한 표출과 그에 따른 각 정당의 지역 당 적 성격강화는 실로 경악할 만한 일이다.
이 같은 총선 결과는 40년 헌정사에서 처음 맞는 경험일 뿐 아니라 앞으로의 정국과 여야관계, 국회운영 등에 있어 커다란 변화와 새로운 질서수립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총선 결과가 주는 교훈과 심각한 과제를 앞으로 어떻게 음미, 소화하느냐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총선 결과는 한마디로 민정·민주당의 참패요, 평민·공화당의 대승이다.
국민은 안정이냐, 견제냐의 갈림길에서 견제 폭을 택했다. 그 승인과 패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돼야겠지만 일단 가장 큰 원인은 지역감정을 떠나 해석하기 어렵다.
이런 선거결과를 우선 정부·여당은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왜 이런 결과가 왔는지를 깊이 따져 앞으로의 정국대처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부·여당으로서는 야당을 더 지지한 국민의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민주화를 촉진하는 길 밖에 없다. 비록 탈 권위주의와 민주화를 내걸고 정권을 잡았지만 이번 총선 결과는 민정당 정권의 민주화의지와 집권 두 달 동안에 있었던 조각·공천·선거양상 등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반영한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지역의 지역감정이 패배의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민정당을 배척하는 지역감정의 해결책은 이제 민정당 정권의 더욱 큰 부담이 되고 말았다.
대승한 야당진영, 특히 평민당은 선거 결과에 교만할 게 아니라 앞으로 대국적 차원에서 정국안정과 국정의 안정적 수행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민정당 정권에 야당우세의 국회라는, 우리로서는 처음 보게 되는 새로운 정치구조는 과거와 같은 여당의 독주나 국회의 무력화 등을 불가능하게 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정국을 불안케 하고 국정의 원활한 수행을 어렵게 하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더우기 국회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강화돼 있고 정권의 지지기반은 37%로 취약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새 국회에서는 여야합의 없이 될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당들이 다수 석을 확보했다 하여 국회를 과격하게 자기주장 대로 끌고 가려 할 경우 필연적으로 정국불안이 오게 마련이다. 여-야 대립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대결이라는 우려할 현상이 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들은 어느 때보다 국정에 대한 책임의식을 철저히 가져야 하리라고 본다. 여당이 과 반 의석을 가졌던 지난날에는 야당은 반대하고 비판하는 기능으로 족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제 야당의사의 참여 없이 국정이 결정될 수는 없게 돼 있다. 야당들은 이런 점을 깊이 생각하여 책임있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과거 야당세가 크게 진출한 선거 뒤에 흔히 정치변혁이 있었다는 점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야당이 눈에 띄게 진출한 8대 선거 이후 10월 유신이 왔고, 야당이 득표 율에서이긴 10대 선거 후에 10·26과 12·12, 5·17이 왔다. 야당 세의 진출이 정국불안→정치위기로 연결되는 도식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도 새 정치판도에서는 무엇보다 여야의 협상 력과 협상기술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립만 하다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대화·협상하고 연합·연립하는 자세와 기술이 있어야 정국의 안정감 있는 전개가 가능해진다.
안정세를 확보 못한 여당으로서는 필요에 따라 특정 야당인사의 입각 등을 통한 연합전선 형성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이번 총 선에서 드러난 지역감정의 문제는 심각히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민당이 호남을, 민주당이 부산·경남을, 공화당이 충남을, 민정당이 대구·경북을 분할 점거하는 식의 이 현상은 실로 두렵다. 그 중에서도 호남의 평민당 집중은 무서울 정도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어떻게 국민적 화합을 이루어 가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이르렀다. 지역 감정의 해소는 이제 국정의 최우선적인 과제가 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광주사태의 해결책을 위시해 인사·사업 등 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지역감정의 근본적 해소를 위한 장·단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야당들도 총선 승리를 위해 무분별하게 지역의식에 호소하던 자세를 부끄럽게 여기고 솔선하여 그 해소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왔다. 명색 지도자라는 인물들이 고향을 인질이나 담보로 잡듯이 지역의식을 부추기고 전략·전술의 수단으로 여기는 행위는 그만 둬야 한다.
이제 선거는 끝나고 모두 선거 후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4·26 총 선의 결과가 충격적인 미 답의 새 정치질서를 우리에게 제시한 만큼이 새로운 틀에서 활성적인 정치발전의 방안을 각 정당과 정치인들은 생각해야 한다.
여러 가지 불안과 유동성을 심각하게 안고 있는 새 구도요, 노 정권에는 큰 시련이 아닐 수 없지만 국민이 선택한 이 결과에 잘 대처하기만 한다면 민주화의 활발한 촉진과 의회정치·정당정치의 활성화를 위한 커다란 전기가 될 수도 있다.
4·26 총선 결과는 우리의 민주화 능력을 이제부터 실험한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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