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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부총리, 오이타현에 가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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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요즘 일본 경제의 기력 회복에는 해외로 빠져나간 기업들의 U턴 현상이 한몫하고 있다. "일본의 숙련된 근로자들은 설계도면에 나온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일본 근로자의 가치를 재발견한 거지요." 일본 미즈호종합연구소의 스기우라 데쓰로(杉浦哲郞) 상무는 "임금 수준이 높아도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뒷받침되면 해외 공장에서보다 훨씬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진단한다.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이 이른바 '2007년 문제'에 야단법석인 것도 '사람'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이 내년부터 본격화되면 과연 일본 경제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경쟁력의 원천이던 숙련 노동자들의 퇴장을 앞두고 일본은 고민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예방책으로 현재 60세인 정년을 2013년까지 65세로 단계적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게이오대학의 세이케 아쓰시(淸家篤) 교수는 "정년 연장을 넘어 아예 정년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숙련 노동자의 활용에 일본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 재계의 총본산인 게이단렌이 정부에 가장 집요하고 가장 분명하게 요구하는 것도 교육개혁이다. 자원도 부족한 나라에서 노동력의 질 말고는 기댈 데가 없다는 것이다. 도시바의 가사미 아키노부(笠見昭信) 상임고문은 "일본의 미래는 사람과 기술에서 찾아야 하고 유일한 해법은 교육의 질을 확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래서 수업 시간을 줄이고 더 놀게 해 주자던, 배부른 거품경제 시절에 도입한 이른바 '여유 교육'은 이미 작파했다. 창의성과 개성은 제자리걸음이고 결국 학력만 떨어뜨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요즘 일본에는 전국적인 학력고사가 자주 실시되고 있다. 목표한 대로 학습 도달도를 달성했는지 확실히 챙기고 있다.

오이타현이 기업 유치를 위해 눈을 돌린 곳도 교육개혁이다. '오이타에서 고교에 다녀도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목표다. 그래야 기업들도 안심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11개로 나뉘어 있던 학군을 폐지해 학생들의 학교 선택 폭을 넓힌다. 학력고사와 학교 간 경쟁을 통해 명문고 탄생을 유도하고, 교사끼리의 경쟁제도도 과감히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우리나라 전교조와 같은 일교조(日敎組)는 맹렬히 반대했다. "교육은 전문가인 우리에게 맡겨 달라"고 우겼다. 그러나 오이타현 주민의 절대 다수가 히로세 지사 편에 섰다. '교사를 위한 교육 대신 학생과 주민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민들의 압력에 교사연맹은 무릎을 꿇었다.

히로세 지사는 "교육이라고 경쟁의 철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한다. 평준화와 평등에 집착하는 것은 국가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37년간 경제 대국 관료로 세계 경제를 다루며 체득한 소신이다. 같은 경제관료 출신이지만 김진표 부총리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그동안 교육에도 경쟁을 도입하겠다고 큰소리치던 그가 갑자기 평준화주의자로 돌아섰다. 오이타현은 멀지 않은 곳이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반이면 날아간다. 김 부총리도 한 번쯤 오이타에 가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