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의 지리산 가을편지] 매미는 울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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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올해의 마지막 매미가 '웁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표현일 뿐, 매미의 입장에서 본다면 틀린 말인지도 모릅니다. 혹시 언제나 슬픈 포즈의 사람들이 지어낸 착각이 아닐까요. 매앰맴 웃는 매미, 야옹야옹 웃는 고양이, 웃는 물고기, 웃는 당산나무는 없을까요. 지리산에 살면서 이처럼 사소한 인식의 전환이 내 삶의 태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가을 매미들이 신명나게 웃고 있다고 생각하니 덩달아 즐거워집니다. 마침내 수령 오백 년의 느티나무가 너털웃음을 터뜨립니다. 이제서야 알 것도 같습니다. 왜 바보가 더 잘 웃고, 어째서 '미친년'은 한결같이 머리에 들꽃을 꽂은 채 웃고 있는지.

잊고 사는 게 있다면, 바로 우리 자신이 매미나 바보보다 더 불행하다는 사실입니다. 둘러보면 소가 웃고, 물고기가 웃고, 인간의 말을 엿들으며 쥐들도 웃고 있습니다. 우리도 한번 바보처럼 웃어볼까요. 그래도 웃지 못하고 시퍼런 칼을 입에 물고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다 엎어질라, 조심하세요.

이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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