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과 대통령에 부담 안 주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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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총리가 주말인 11일과 12일 이틀간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두문불출했다. 밖에서는 검찰이 3.1절 골프에 대한 수사에 들어가기로 했고, 야당인 한나라당이 부산 아시아드 컨트리클럽에 대한 현장 조사까지 벌이는 등 부산했다. 골프 모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이제는 '공직자들의 거짓말에 대한 불신'파문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이 총리는 표면상으론 일체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총리 공관 측은 이 총리의 건강과 주말 일정을 묻는 기자들에게 "공관에 계시다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귀국이 14일로 다가옴에 따라 자신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에게 해야 할 말을 정리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칩거하며 여론 청취한 이 총리=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이 총리가 이날 가까운 의원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들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이 총리가 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이 총리는 마음을 정리한 것 같다는 정황이 많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이 총리 본인이 선거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 5.31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결국은 사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내기 골프 사실이 10일 오전 보도된 뒤 한국 노총 60주년 행사에 갑자기 불참했다. 총리실은 "이 총리가 이런 상황에서 대외활동을 하는 게 적절치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선 이때부터 이 총리가 뭔가 결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총리 비서실은 주말 동안 조를 짜 출근했다. 혹시라도 총리가 갑작스러운 지시를 내릴 경우에 대비하고, 또 여론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서다.

◆ 첫 번째 주말 이후엔 상황 반전=이 총리는 평소 주말엔 주로 골프장을 찾았다. 격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3.1 절 골프 파문이 터진 뒤 이 총리는 4일과 5일 주말 내내 총리 공관에서 나오지 않았다.

대신 5일 이강진 총리 공보수석을 통해 사과하면서 "노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에서 돌아오면 거취 문제를 얘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5일의 사과 발표를 이 총리의 사임 의사라고 해석해 보도했다.

하지만 이 총리의 첫 번째 주말 칩거가 끝난 6일 오후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청와대와 여권에서 일제히 '이 총리 유임 가능성'을 밀고 나왔다.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은 7일 "대통령이 여론뿐 아니라 국정 운영 등 종합적인 요소를 고려해 판단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총리실에서도 "총리 발언 중에 사임이란 표현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이 총리가 사임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보인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이 총리와 골프를 함께 쳤던 이기우 교육부 차관의 해명 기자회견 이후 새로운 사실이 잇따라 터지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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