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 보고서에 부정적 내용은 몰라도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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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이 중요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제목은 ‘글로벌 경제 전망’이다. 매년 1월과 6월에 정기적으로 내는 자료다.

세계은행, 글로벌 경제전망 보고서 발표 #"올해 세계경제 3.1% 성장" 장밋빛 전망 #'한반도 긴장' 등 지정학적 위험 경계 #"현실화될 경우 매우 심각한 영향" #기재부, 보고서 요약본 보도자료 배포 #중동 지역만 언급하고 한반도는 제외

내용은 긍정적이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3.1%로 내다봤다. 지난해 6월 전망치보다 0.2%포인트 높아졌다. 지난해에서 시작해 올해와 내년까지 3년 연속 세계 경제가 3%대 성장할 거란 전망이다. 반가운 소식이다.

세계은행 김용 총재. [중앙포토]

세계은행 김용 총재. [중앙포토]

기획재정부는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해 보도참고자료를 냈다. 여기까진 좋다. 그런데 기재부 보도자료에는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한국에 대한 언급이다.

세계은행은 세계 경제를 이끄는 주요 선진국과 신흥개발국, 저개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따로 발표한다. 여기엔 한국이 빠져 있다. 세계은행이 보기에 한국은 주요 선진국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흥개발국이나 저개발국도 아니란 얘기다. 그럴 수도 있다.

세계은행이 한국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게 아니다. 좋은 쪽은 아니다. 오히려 지정학적 위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한반도 긴장(tensions on the Korean peninsula)’때문이다.

인민일보 해외판의 인터넷판이 미군 칼빈슨 항모의 한반도 전개에 대해 긴장을 고조하지 말아야 한다며 관련국의 자제를 촉구했다. [인민일보 해외망]

인민일보 해외판의 인터넷판이 미군 칼빈슨 항모의 한반도 전개에 대해 긴장을 고조하지 말아야 한다며 관련국의 자제를 촉구했다. [인민일보 해외망]

세계은행 보고서의 33쪽엔 이렇게 나와 있다. “2017년 지정학적인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 주로 한반도 긴장을 반영한 것이다. 지금도 역사적인 표준보다 높은 수준이다(Geopolitical risks spiked during 2017, mainly reflecting tensions on the Korean peninsula, and is also above historical norms).”

한 번뿐이 아니다. 보고서의 79쪽에도 나온다. 동아시아 경제의 하강 위험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위험 요소를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그중 첫째가 한반도 문제다.

원문은 이렇다. “Geopolitical tensions in the Korean peninsula increased substantially in 2017. A rise in this and other geopolitical risks, especially those involving large economies, could negatively affect confidence and lead to bouts of risk aversion and financial stress across the region. The materialization of such risks could have very serious effects on regional activity.”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2017년 한반도에서 지정학적인 긴장이 상당히 커졌다. 한반도와 다른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는 것이 동아시아 지역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이 현실화된다면 지역 경제활동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재부 보도자료엔 이런 내용이 일언반구도 없다. ‘지정학적 긴장’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하다. “중동지역 분쟁 등 지정학적 긴장 고조”라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담당 부서는 기재부 개발금융국 개발금융총괄과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했다. 강정현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했다. 강정현 기자

보고서가 너무 두꺼워서 내용을 놓쳤을까? 실제로 보고서는 꽤 두껍다. 표지를 포함하면 260쪽이 넘는다.

하지만 내용 검색은 쉽다. 한국 관련 정보가 궁금한 사람은 ‘Korea’라는 검색어만 치면 된다. 관련 내용이 줄줄이 나온다. 보고서는 PDF 파일로 정리돼 홈페이지(www.worldbank.org)에 올라 있다. 정보 검색에 어려운 IT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기재부가 몰라서 놓쳤을까? 아니면 알고도 빠뜨렸을까? 세계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매우 중요한 국제기구다. 회원국은 한국을 포함해 189개국이다. 이런 곳에서 한국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중요한 관심사다.

만일 기재부가 불리한 내용이라서 일부러 빠뜨렸다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기재부 자료의 신뢰성에 의심을 받을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좋은 측면만 보여주는 정부가 아니라 ‘정직한 정부’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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