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피하던 주민들 "자원봉사" 자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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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 실버센터에서 노인들이 복지사에게 음악치료를 받고 있다. 김상선 기자

7일 오후 서울 방학3동 도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도봉실버센터. 열 명 남짓한 치매 노인이 2층 프로그램실에서 음악치료 강사의 지도에 따라 '봄~봄~봄~봄, 봄이 왔어요'라는 노래 '봄'을 부르며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흔들면 소리가 나는 달걀 모양의 셰이커(shaker)를 계속해서 옆사람에게 넘겨주는 일종의 수건 돌리기 게임이다. 하지만 증세가 심한 몇몇 노인은 셰이커를 하염없이 쥐고 있다. 마침내 노래가 끝나고 허복희(80.가명) 할머니와 박성호(81.가명) 할아버지가 앞에 나와 노래 부르는 벌칙을 받았다.

"나는 노래 못 불러. 학교 다닐 때 음악 점수가 제일 안 좋았어. "

허 할머니가 잠시 투정을 부렸지만 강사가 기타 반주를 시작하자 열심히 따라부른다.

같은 층 중앙홀에서는 뇌졸중으로 휠체어를 탄 노인 10여 명이 통유리로 쏟아지는 따뜻한 봄햇볕을 맞으며 퍼즐 맞추기에 한창이다. 4층으로 올라가 보니 자원봉사자 '카수'가 진행하는 노래방이 흥을 돋운다.

중증 치매.뇌졸중 노인을 수용하는 구청의 노인전문 요양시설이 인기다. 현재 서울에서 노인요양 시설을 운영하는 곳은 도봉구와 동작구 등 두 곳. 도봉구가 땅을 제공하고 정부와 시가 80억원을 대 조성한 도봉실버센터는 지난해 1월 4층 규모로 문을 열었다. 현재 수용 인원은 131명으로 빈방이 없다. 한때 빈자리 나기를 기다리던 대기 인원이 300명을 넘어서자 센터에서는 서류심사를 엄격히 해 100명으로 줄였다. 그중 도봉 구민만 35명. 구민 우선 원칙에 밀려 다른 구의 노인은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하다. 물론 요즘도 하루 평균 두세 명이 센터를 직접 찾아 입소 자격을 묻고 전화도 대여섯 통씩 걸려온다.

50명 수용 규모로 지난해 9월 문을 연 동작구 실버센터도 현재 빈자리가 없는 상태다. 대기 인원은 30여 명이다. 이들 실버센터는 시설과 서비스는 민간 시설 못지않게 좋으면서 한 달 입소 비용은 70만6000원으로 민간(150만~300만원)에 비해 훨씬 싸다. 운동치료실.물리치료실.작업치료실.공동목욕탕 등을 갖췄고 간병인만 39명이다. 간호사.영양사.사회복지사 등이 한 달에 한 번 회의를 통해 노인 상태에 맞는 재활프로그램.식단을 짜는 맞춤서비스도 제공한다. 일본 사회복지시설 관계자가 네 차례나 견학 올 정도로 이름난 운영 방식이다. 한전산업개발 북부지점, 롯데유통 등 지역 기업들은 주말 자원봉사를 수시로 자청하고 나섰다.

도봉구 실버센터의 안정희 총괄팀장은 "실버센터가 치매요양 시설에 대한 지역 주민의 정서까지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혐오 시설이라며 반대가 심했던 주민 중 일부가 이제는 센터의 간병인이나 자원봉사자로 나설 정도로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

서울시는 자치구별로 실버센터가 하나씩 생길 수 있도록 40억원까지 건립비를 지원하고 있다. 강동.노원.서초.영등포.용산 구도 건립을 추진 중이고 강서.동대문 구는 시.구에서 운영비를 지원받아 사회복지법인들이 실버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신준봉 기자<inform@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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