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잿물 섞은 참기름-보건당국은 눈 가리고 있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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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뜸하다 싶던 부정식품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작년 3월 쇠가죽 수구레에 각종 유해화학물질을 넣고 족편을 만들어 시중에 팔아온 사건을 마지막으로 잠잠했던 부정식품이 20억원대의 가짜 참기름 제조업자의 적발로 1년만에 되살아났다.
우리가 여기서 유념해야할 일은 우리 생활 속의 암적 존재인 부정식품이 그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 아니라 지난 1년 동안의 과도기의혼란과 격동 속에 숨어서 오히려 독버섯처럼 번성하고 창궐했다는 점이다. 시민, 학생들의 데모와 노사분규 및 대통령 선거 등 일련의 정치, 사회적인 사건과 행사로 어수선했던 사회분위기를 절호의 기회로 삼아 온갖 불량, 부정식품이 번창했으리란 짐작은 어려운 것도, 증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 분야에 이골난 업자들의 과거의 행태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번에 적발된 가짜 참기름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기름을 짜고 버리는 깻묵에 양잿물과 솔벤트를 넣어 가짜 참기름을 만드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수법이다. 양잿물은 쇠붙이도 녹여버릴 만큼 강한 알칼리성 독극물이다. 솔벤트는 인체에 들어가면 육체는 물론정신까지도 이상을 일으키고 암을 유발시키는 무서운 광물질이다. 이들 악덕 업자들이 이러한 구체적인 것까지는 모르더라도 막연하나마 해로운 독극물이란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사람에게 극히 해로운 줄 뻔히 알면서도 이러한 유해식품을 고의적으로 만들어 판 업자는 법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형벌로 다스림으로써 엄중히 응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부정, 불량식품 적발이 없었던 지난1년 동안 이를 단속해야할 보사 당국자들은 무얼 했는가에 대한 책임은 추궁돼야 한다. 다른 것은 덮어두고라도 이번 가짜참기름의 경우 무려 1년반 동안이나 전국 시중에 나돌았던 유해식품을 그대로 방치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직무유기다.
더구나 이들 악덕업자들은 가정집 부엌이나 헛간에 숨어서 한 것도 아니고 버젓이 간판을 단 공장을 차려놓고 부정식품을 만들었다. 수시로 이들을 점검하고 감시해야할 식품단속반원들이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고, 알고서 묵인해 주었다면 이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배임이요, 야합의 의혹을 벗어나기 어렵다. 감독과 단속을 책임진 공무원에 대한 조사와 응징도 있어야 마땅하다.
이같은 책임은 비단 식품단속 공무원뿐만 아니라 관내의 법질서의 유지와 치안을 맡고있는 경찰관서에 대해서도 같은 비중으로 추궁돼야할 것이다.
보건당국은 이럴 때마다 인력과 예산의 부족을 입버릇처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부족한 인원이나마 최선을 다해 임무에 충실했느냐가 문제다. 당국은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뿌리를 뽑겠다」고 엄포를 놓아왔다.
그러나 광복이후, 40년이 넘도록 고쳐지지 않고 있는 반사회적 범죄가 바로 이 부정, 불량식품 제조다. 언제까지 인원, 예산 타령만 하고 있을 것인가. 부족하면 늘리고 취약하면 보강해야할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부정식품은 국민에게 피해를 끼치고 난 뒤 사후적발보다는 사전단속이 중요하다.
국민생활의 가장 기초가 되는 식품 하나 안전성을 보장 못하는 처지에 올림픽을 개최하고 국민소득이 오른다 한들 누가 선진국이라고 흔쾌히 인정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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