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정국혼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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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총선을 앞두고 요즘 정계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한마디로 한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곧 성사될 것 같던 야당 통합은 무산직전에 있고, 여야간에 원칙적 합의를 보는 것 같던 소선거구제도 다시 흔들리고 있다.
정국의 혼미상태가 이렇게 계속되다가는 야권분열 속에 1구2인제의 현행선거법으로 13대 총선을 치르게 되는 최악의 결과가 올는지도 모를 형편이다.
정국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여야당과 그 정치지도자들이 일관성도 원칙도 없고 무엇보다 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김대중 평민당총재의 거취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야당통합이 이뤄지면 후퇴할 것이라고 공언해놓고 통합협상 막바지에 이르러 두 김씨 공동 대표제를 평민당이 당론으로 결정한 것은 무엇인가. 통합되더라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말이고 그것은 며칠 전까지 여러 차례 되뇌어온 「통합 후 후퇴」발언을 거짓말로 만드는 것이다.
공동대표주장이 통합협상을 결렬위기로 몰아넣고 여론의 비판이 거세자 김 총재 측은 이의 철회용의를 시사한 모양인데 정치지도자로서 이렇듯 일관성 없이 자기 말을 뒤집고 또 뒤집어서야 자신은 물론야당의 신용이 떨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김 총재로서는 물론 객관적 상황과 그를 지지하는 당원, 국민들의 여망 때문이라고 할는지 모르나 그의 이런 일관성 없는 태도는 지난번 대통령 직선제가 되면 출마하지 않겠다, 야당 후보단일화는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등의 약속을 뒤집은 것과 관련해 적잖게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이다.
통합협상에 임하는 민주·평민당의 다수의원들에게도 문제는 많다. 소선거구제를 수용키로 한 두 김씨 합의를 전폭 지지했던 야당의원들은 통합→소선거구제의 실현이란코스가 눈에 보이자 다시 소선거구제를 기피하는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소선거구제로서는 당선이 어렵다고 보는 이들은 얼마전의 자기들 결정과는 상관없이 또다시 중선거구를 거론하고 소선거구를 피하기 위해서는 통합을 깨는 편이 낫다는 식으로 움직이는 인상이다.
실제 야당 통합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야당의원들의 이같은 이해타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의원들이 이처럼 줏대 없고 자기이익만 좇는 자세를 갖고서야 야당이 야당다운 채신이나 모습을 지킬 수 없다.
일관성이 없는 것은 민정당 쪽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민정당은 1구1∼3인제와 소선거구제에서 왔다 갔다 하더니 야당 측이 소선거구제로 가는 듯 하자 소선거구제를 당론으로 결정하고 구체안까지 만들어 놓고는 이제 와 다시 1∼3인제 안으로의 복귀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정당 내부에도 소선거구로서는 당선이 위태롭다는 의원들의 반발이 많고, 당 지도부 역시 일정한 주견 없이 안팎 사정에 따라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모습이다.
여야당과 정치인들의 이런 한심한 처사를 보고 국민들은 어떻게 느끼겠는가.
물론 임박한 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치인들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거기에도 정도가 있고 상식이 용허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사람됨됨이나 조직의 허실은 이처럼 이해가 엇갈릴 때 나타나는 「본심」을보고 알 수 있다.
지금이라도 야당은 심기일전해서 통합을 성사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선거구문제도 소속의원들의 이해가 비록 엇갈리더라도 대국적 견지에서 야당세의 신장을 가져올 단일안을 밀고 나가야할 것이다.
민정당 역시 우왕좌왕을 그만두고 우리 현실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건강한 정계를 구성할 수 있는 선거제도가 무엇인가 하는 차원에서 선거법을 처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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