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 초등생 유서엔…“어른들은 좋은 말만 하는 선한 악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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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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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에 괴로워하다 아파트 8층에서 투신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A군은 지난달 19일 “같은 반 학생들에게 몇 달동안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품고 아파트 자신의 방 창문에서 뛰어 내렸다. 다행히 나뭇가지에 걸려 목숨을 건졌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A군은 중환자실과 일반 병동을 거친 뒤 퇴원했다.

20일 아시아경제는 A군이 가슴에 품고 뛰어내렸던 유서 일부를 공개했다. 유서의 한 구절에는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자신 이외에는 생각하지 않는 입으로만 선한 악마입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자신을 투신에 이르게 한 데에는 학교 친구들이 아닌 어른들의 책임이 컸음을 알리는 대목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군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이는 사건이 벌어진 후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해 학생들이 아들의 성기를 강제로 노출시키는 등 강제추행을 저지르고 집단으로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며 “성동구의 다른 초등학교 교사인 한 가해학생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여러 차례 알렸으나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주의를 주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제주도 수학여행 때는 가해학생들이 A군과 같은 방을 쓰면서 집단 구태 하는 등 학대를 저질렀는데도 학교와 가해자 측에서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학교 측 대응을 비난하는 글이 퍼지자 학교 측은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지 않았고,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사안을 다뤘다”며 “충분한 조사를 거쳐 가해 학생들에게 징계 조치를 내렸다”는 입장문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가 내렸다.

한편 A군 측은 투신 사건이 벌어진 후인 지난 4일 학교와 성동광진교육지원청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교육지원청은 이튿날 학교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조사를 벌였다. 학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고 가해 학생 3명 중 1명에게 강제전학, 2명에게 학급교체 조치를 내린 상태다.

교육청 관계자는 “초등학교·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퇴학 처분이 불가능하다. 학교 측에선 최고 수준의 처벌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담임교사는 경찰 조사에서 ‘A군이 가해 학생과 문제가 있음을 알고 지도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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