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동물학계의 아인슈타인’ 그 내면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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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로렌츠
클라우스 타슈버·베네딕트 푀거 지음
안인희 옮김,사이언스 북스, 474쪽, 1만9800원

"오리나 거위는 알에서 깨어나온 뒤 특정 시기에 처음 본 사물을 어미로 여긴다. 그래서 그 시기에 먹이를 준 사람을 어미로 착각하기도 한다. 다 자란 다음에도 계속 따른다. 먹이를 준 어미나 사람을 뇌 속에 각인했기 때문이다. 곁에서 지내는 사이에 어린 새끼는 시각.청각.촉각 등을 통해 상대의 인상을 머릿속에 심게 된다. 이렇게 부모를 따르면 어미가 보호하기도 쉬워지는 효과도 있다."

동물학에서 말하는 '각인 학습'에 대한 설명이다. 지금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 현상은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1903~89)가 1935년 처음 관찰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갓 알에서 깬 청둥오리 앞에서 어미 오리의 울음소리를 흉내 냈으며 새끼들은 그를 어미로 여기고 따랐다.

이 책은 '동물학계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로렌츠의 전기다. 73년 동물 행동에 관한 비교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회색 기러기에 대한 연구로 '회색 기러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새 등 동물의 사회성을 비교 연구하는 비교행동학을 창시했다. 특히 동물의 공격성을 깊이 파헤쳤다. 그는 물고기 등을 관찰해 동물의 공격성은 근본적으로 나쁜 게 아니라 종을 보존하기 위한 본능 같은 것이라고 주장해 격렬한 논쟁을 유발했다.

로렌츠는 독특한 연구 방법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자연을 멀리서 관찰하는 것도 기꺼워하지 않았다. 대신 집이나 연구실에서 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해야 동물의 실제 본성을 눈 앞에서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항상 동물과 생활해온 그는 그래서 자연주의자로 통하기도 하며 환경운동의 창시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 책은 로렌츠에 대한 칭송으로 일관하지 않는다. 그의 또 다른 측면인 나치 지지 전력에 대해서도 자세히 밝힌다. 이를 통해 한 과학자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다. 마침 이 책과 나란히 로렌츠의 저서 '인간,개를 만나다'(구연정 옮김, 사이언스북스, 269쪽, 1만2000원)가 번역돼 나왔다. 개들의 삶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극적으로 그렸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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