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어떻게 즐기고 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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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만큼 '보는 만큼 알게 된다'도 진실입니다. 현대미술이 너무 어렵다고요? 화랑에 들어가기가 두려우시다고요?

우선 화랑 문턱을 넘어보세요. 미술은 '아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서울 인사동.사간동.광화문.평창동.청담동.신사동.홍대 앞쪽에 화랑 거리가 만들어져 있으니 친구나 가족과 함께 나들이 삼아 둘러보세요. 미술은 찾아가서 보고 자기 눈과 마음을 키우는 일이 으뜸입니다.

미술감상은 백 사람이면 백 가지의 답을 내놓는 분야입니다. 예술 감상에 있어서는 결코 남의 노예가 되지 마세요. 당신이 주인입니다. 꽃 그림이 좋으세요? 그럼 꽃 그림에서 출발하세요. 추상화가 좋습니까? 그럼 왜 좋은지 생각하고 말하고 즐기세요. 좋아야 오래갑니다. 전문가가 추천했다고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 작품을 노려보지 마세요. '나만의 걸작'을 만들고 즐기는 일이 미술품과 친해지는 지름길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꾸 만나고 싶은 것처럼, 좋은 미술품을 발견하면 자주 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헤어지기 싫어서 결혼하는 연인처럼, 곁에 두고 싶은 미술품이 생기는 때가 바로 미술품 수집을 시작할 단계입니다. 마음을 준 그림이 머리맡이나 거실에 걸려 있어 언제나 눈길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문제는 그림이나 조각 한 점 사는 게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거지요. 미술품 컬렉션의 역사가 긴 서구에서는 부동산.보석.미술품을 3대 실물 투자 대상으로 치지만 우리 실정에는 아직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권해드리고 싶은 방법은 돈 액수에 매이지 마시라는 겁니다. 판화나 사진, 조각처럼 멀티플 에디션(한 작품을 여러 점 찍어내는 것)이 가능해서 상대적으로 싼 작품부터 시작하시면 어떨까요? 여러 점 찍는다지만 서너 점에서 열 점 안팎인데다 요즈음은 사진 값이 오르는 추세라 투자 가치도 무시할 게 아닙니다. 일상 생활에서 쓸 수 있는 가구나 공예품도 잘 고르면 몇십 년 쓰다가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예술품이 많습니다.

이런 일 역시 화랑 문을 밀고 들어가시는 일이 먼저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사야할지 모르시겠다면 화랑에 찾아가 주인을 귀찮게 해보세요. 전시회를 열고 있는 작가에게 자꾸 물으세요. 미술 감상과 투자는 눈과 발이 밑천입니다. 자, 지금 봄 화랑가로 나서보세요. 연애하는 심정으로.

이주헌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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