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봄맞이 유니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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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우리 남매를 남부럽지 않은 입을거리와 먹거리로 즐겁게 해 주셨다. 철없던 나는 우리집 형편을 생각하기보다 그저 신나기만 할 뿐이었다.

그날 백화점에서 노란색 정장 투피스를 샀다. 그리고 그 옷을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입고 나갔다. 4학년 개강 날에도 내 옷차림은 노란색 투피스였는데 늘 나와 함께 다니던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너, 오늘 그 옷 입고 올 줄 알았어."

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 말이 내가 4년 내내 개강 날 그 옷을 입고 나타났다는 거다. 당시 난 치마를 잘 입지 않았는데 그 불편한 정장 투피스를 그것도 1년에 두 번씩 행사하듯 입고 다녔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구입한 정장이다 보니 봄의 이미지인 노란색과 첫출발에 대한 경건함이 매년 개강 날마다 그 옷을 입게 만들었나 보다.

그런데 그때마다 겨울보다 더 추운 꽃샘바람이 얇은 봄옷을 입은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것 같다. 봄의 산들거리는 따뜻한 손길은 한번도 노란 투피스에 불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난 그 옷을 입고 나갔다. "멋쟁이가 되려면 추운 것 정도는 참아야지" 하면서.

그러나 내가 그 옷을 해마다 봄 첫나들이 옷으로 입고, 아직도 봄이 되면 그 옷이 생각나는 건 멋을 부리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차가운 겨울바람 같은 생활 속에서도 우리를 따뜻하게 키워주신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중풍으로 누워 계신 할머니를 11년 동안 수발하고 공무원이던 아버지의 박봉 속에서도 자식들을 기르느라 애쓰시던…. 나는 부드럽고 따뜻한 봄바람처럼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을 입고 다닌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된다. 우리 아이들이 나의 사랑을 입을 수 있게 교복을 깨끗하게 손질해 놔야겠다.

강명휘(주부.강원도 춘천시 우두동 017-674-0709)

*** 10일자 소재는 '꽃샘추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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