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대한민국남편들아] "… …"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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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잠자리가 요란하다. 잘 때 아내는 코를 골고 남편은 잠꼬대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격한 육체 행위인 사랑을 나눌 때는 오히려 조용하다. 우리는 숨소리라도 새어나갈까 봐 조심조심 입을 다물고 숨을 삼키며 한다. 어떤 때는 그도 불안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다.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집에는 다 자란 아이가 둘이나 있다. 고2와 중3인 아이들은 밤잠이 없다. 늦게까지 TV를 본다, 인터넷을 한다, 음악을 듣는다, 게임을 한다면서 집안을 마구 돌아다닌다. 나야 상관없지만 아내는 아이들이 신경 쓰여 집중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아내에게 기찻길 옆 오막살이 이야길 해준다.

"그 노래 알지?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 아기 잘도 잔다."

"그 노래가 왜?"

"생각해 봐. 기차소리가 그렇게 요란한데 방음시설도 안 된 오막살이에서 아기가 어떻게 잘도 잘 수 있겠어? 그건 말이야, 아기가 집중해서 자기 때문이야. 그러니 자, 집중해 보자고."

아무리 노력해도 아내는 집중이 안 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독재자의 얼굴로 '효자손'을 들고 아이들을 재우러 나선다. TV와 컴퓨터를 끄고 mp3와 휴대전화를 압수한다. 자기들 방으로 아이들을 몰아넣는다. 부모의 행복 추구 때문에 아이들은 헌법이 보장한 '신체의 자유'를 제한당한다. 저항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독재자일수록 명분은 그럴듯한 법.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늦게 자면 건강에 나쁘다'는 교훈을 내세워 아이들의 입을 틀어막는다.

사실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신혼 때부터 그랬다. 한동안 어른들과 함께 살았던 우리는 소리가 방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서로의 입을 틀어막고 최대한 몸놀림을 작고 빠르게 해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 섹스가 몸에 배어서인지 지금도 우리는 소리 없이 빠르게 한다. 그것은 마치 볼륨을 최대한 줄이고 속도는 2배속으로 해서 몰래 보는 야한 비디오 속 사랑처럼 우스꽝스럽고 슬프다.

아이들이 봉사활동을 나간 지난 일요일 나는 아내와 단둘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엉큼한 침이 입안 가득 고이는 것 아닌가. 꿀꺽.

"우리 하자." "뭘?"

나는 대답도 없이 아내에게 달려든다.

"미쳤어?" "사랑한다."

환한 대낮에 거실에서 나누는 사랑이 쑥스러운지 아내는 줄곧 TV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아이들이 없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빠르고 조용하다. 긴장을 풀어도 좋으련만 아내는 입을 꾹 다문 부동자세고 나는 쫓기듯 서두른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그만 짧은 신음을 뱉는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아내가 살큼 웃는다.

"소리 좀 크게 해봐." "응?"

"잘 안 들리잖아. 좀 크게 해보라고."

"민망하게…."

"TV 볼륨 좀 높이라는데 왜 자기가 민망해."

"사랑을 나눌 때 소리 내는 것을 두려워 마라. 아내가 내는 소리가 그대 귀에 듣기 좋은 것처럼 그대가 내는 소리 역시 아내를 즐겁게 만들 것이다." - '대한민국 유부남 헌장'

김상득 듀오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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