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교 6학년 어린이가 시집 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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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민학교 어린이가 시집을 냈다.
서울 방일국민학교 6년 안다솔군 (13)..
금주 말 출간할 안군의 시집『만남의 반지름 지우고』(상사연 간)는 그러나 보통의「소년시집」이 아니다.
시의 내용들이 기성시인의 작품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상상력과 생각의 깊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86년 여름 하천부지에 불법으로 옥수수를 재배하다 적발돼 자살해 버린 한 사내를 위해 안군이 쓴 시『키만 큰 공무원』은 이렇게 풀려나간다.
『유난히 키가 큰 옥수수나무에/유난히 키가 작은 박대원 아저씨가/목숨을 게웠다/총총하게 여물어 가는 옥수수 알갱이보다/훨씬 덜 영글은 박씨의 생활/듬성듬성한 생활의 편력을 지우려고/열룩진 바람 구멍을 몸으로 때우며/하천부지에 꽂아둔 끈끈한 목숨…님』
방배동에서「우렁깍지」라는 식품점을 하는 안상문(50)·김석순(47)부부의 차남 안군은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일기를 썼고 일기장 40권의 절반이 시로 쓰여졌다. 그의 문재를 발견한 담임선생의 권유에 따라 3학년 때부터 안군은 철학서를 읽기 시작했다.『불교세화』 에서 시작된 안군의 독서는「욀듀런트」의『철학이야기』,「단테」의『신곡』,「프롬」의 『소유냐 삶이냐』,『장자』등으로 이어 졌으며 그의 시 재는 교내 외 각종 글짓기대회를 휩쓸어 왔다.『장자와「루소」를 제일 좋아해요. 자기가 없는 상태로 흘러가는 자연이 인간이 만든 그 어떤 도덕이나 종교보다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저는 요즘 문명의 타락과 인간의 죄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어요.
『마음 열어/꽃 빛 하늘 급히 갈아 마시고/꽃 내음 잎 부르니/호호 불며 피운 꽃/3일 곱기도 어렵구나』(『목련』중에서).
소년의 시들은 이처럼 무위의 세계를 그리는가하면 인식론과 현상학적 단어가 튀어나오고 박종철군의 죽음에 대한 분노까지 담고 있다.
『어른들이 쓴 시나 소설은 아직 안 읽어요. 저도 모르게 기법을 모방할까 두려워서요.』 지적이고 감성적인 소년 안다솔군. 그러나 아직 경험이 없어「사람」은 잘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할 때 그는 분명 순수한 어린이였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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