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책 보며 회고록 쓰고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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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통령재임중 한국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해 왔지만정치적 정통성과 집권의 합법성 문제가 밖에서 거론돼 왔다. 앞으로 군에 의한 정부승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군이 앞으로 집권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물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으면 한국은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5공화국 정부의 정통성에 대해서도 5공화국의 출범배경부터 설명해야겠다. 79년10월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졸지에 서거한 뒤 한국은 정치 사회가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극도의 혼란에 빠졌었다.
박대통령 서거직후인 그날 밤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고 80년후반기에는 그러한 상황하에서 당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합법적·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부가 출범한 것이다.
5공화국 헌법은 국민투표를 통해 95%의 투표율과 투표자의 91% 찬성을 얻어 만들어졌으며, 그 헌법에 따른 선거에서 모든 국민의 자유 의사가 반영되는 분위기속에서 (당시는 계엄도 해제된 상태였다) 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에 정통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추가로 설명하면 여러분은 지난해 l2월의 대통령선거 과정을 잘 보았을 것이다. 개도국으로서 대통령선거분위기가 그렇게 자유스럽고 공정스러울 수가 없었다.
또 선거방법도 야당의 요구를 전폭 수용해 직선제를 따랐다. 그 결과 노태우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는데, 그후 야당지도자들이 결과에 승복하고 승자에 축하의 꽃다발은 보내지는 못하더라도 그 결과에 대해 어떤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 여러분들도 잘 알 것이다.』
-대통령께서 집권하기 전 불행하게도 광주사태가 있었다.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광주사태는 당시 국가존립문제가 위태로울 정도의 최악의 상황하에서 국가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으로서 대단히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광주시민과 정계지도자들이 협력해서 이 불행한 사태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루속히 수습되기를 희망한다.』
-만약 79년 당시로 돌아간다면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달리 출발을 하겠는가. 또 이임 후 계획은.
『솔직히 말해 나는 79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당시 상황이 매우 어려워 전국민이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79년, 80년 그 당시에는 대통렁이 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람마다 자기 전공분야가 있는데 정치는 나의 전문분야가 아니고 관심도 없었다.
다시 돌아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문제는 퇴임 후 시간을 갖고 연구해 개인적으로 답변하겠다(웃음).
오늘로써 임기가 꼭 26일 남았는데 우선 나가서 가족들과 푹 쉬고 싶고… 대통령을 꿈꾸지 않은 사람, 대통령이 되고 나니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대통령 된 것보다 훨씬 피곤하고 바쁜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는 보고싶은 책도 보고 그 동안 경험하고 체험한 것에 대해 회고록도 쓰고싶고 자유롭게 여행도 해보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자유를 박탈당하는 직책이 대통령이다. 그만두면 박탈당한 나의 자유를 되찾을 생각이다.
요즘은 우리가족들이 이사를 간다고 즐거워하며 밤늦게까지 얘기하느라 밤잠을 설치는 때가 있다』
-지금부터 서울올림픽때까지 남북관계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우선 북한은 6·25남침 당시나 지금이나 무력적화통일이라는 전략에 전혀 변화가 없다.
작년11월의 KAL 858기 폭파사건은 북의 이같은 전략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선 올림픽까지 살펴본다면 북한은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테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한다든지 전략변경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의도를 명확하게 읽고 있어 북한이 어떤 방해책동을 취하든 전국민이 일치단결해 이를 물리칠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올림픽 참가선수는 물론 모든 관광객들의 신변안전을 완벽히 보장할 수 있다(남북한과 극동의 미소군사력을 수치를 들어 상세히 설명). 최근 소련의 극동군사력 증강은 북한의 이른바 무력남침을 고무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우려된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소련과 중공 등 공산권국가들이 대거 서울올림픽에 참가할 것을 밝혔기 때문에 올림픽이 끝난 뒤 북한은 국제적 고립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급속한 성장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남북간 국력격차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남북관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회복이다. 이 신뢰회복의 바탕위에서 남북간 평화공존의 환경이 조성될 것이며, 나아가 평화적 민족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이뤄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재임기간을 통해 가장 빛나는 업적 한가지와 가장 유감스런 일 한가지를 들고 대통령으로서 스스로 평점을 한다면 100점 만점에 몇점이나 자신에게 줄 것인가.
『업적이 많은데 한가지만 대답하라니 매우 섭섭하다(웃음). 두가지만 얘기하겠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민주정치발전을 위해 건국이래 처음으로 헌법을 준수하고 평화적 정부이양을 실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취임당시 6백3억달러선의 GNP를 작년말 현재1천2백억달러로 배증시킨 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한다.
재임중 가슴아프고 고통스런일이 많았으나 특히 버마 방문때 북한측의 테러로 각료를 비롯한 유능한 인재들이 희생된 것을 지금도 마음아프게 생각하며 유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금할 수 없다.
나 자신에 대한 점수를 내가 채점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여러분들이 채점해 비밀리에 보내주면 고맙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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