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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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났을때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린 말이 있다.
「cover-up」(은폐)이다. 범죄수사를 방해하여 감추거나 열버무리는 일이다.
「커버 럽」이란 말이 이때 처음쓰인 것은 아니다. 이미19세기 사상가 「에머슨」이 쓰고 있다.
물론 그때 그는 「물건을 싼다」거나 「덮개를 한다」는 뜻으로 썼다.
그게 최초로 수사용어가 된 것은 추리소설가 「챈들러」에 의해서다.
그는 1953년의 소설 『검은 마스크』에서 『경찰이 살인사건에 대해서 그런 수사은폐를 생각하는 것을 당신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적었다.
「챈들러」의 말은 경찰의 수사은폐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한다.
특히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 조작사건 1주년을 맞으면서 박군의 사체를 부검했던 의사와 당시 수사담당검사가 새로 경찰의 은폐 조작 사실을 폭로하고 있는 우리에겐 더욱 의미가 있다.
부검의사는 자신이 겪었던 모든 일을 기록해 두었던 일기장을 공개했다.
경찰수뇌가 사건의 진상을 알면서도 『쇼크사로 해달라』 고 여러차례 압력을 가한 사실이 상세하게 밝혀겼다.
진실을 은폐하려고한 우리 경찰의 추악한 「커버 럽」도 저절로 드러났다.
진리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스말로 진리는 「아레테이아」다. 레테이아(은폐)를 부정하는 것,은폐를 벗기는 것이다. 억지로 감춰진 것, 숨긴 것을 드러내면 그게 바로 진리다.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맑은 양심과 투철한 용기가 있는 인간이 살아있는한 그건 틀림없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일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압력에 굴복해 양심을 속이고 은폐에 동조한 사람은 더욱 많다.
통탄할 일은 경찰수뇌는 물론 헌법상 최고 수사기관인 검찰마저 외부압력에 굴복해 은폐에 나서는 사회현실이다.
「닉슨」대통령은 「미스터 커버럽」 의 이미지를 역사에 남겼다.
우리의 「은폐씨」도 결국 얼굴을 가리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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