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댓글 퍼뜨리면 손해배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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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인터넷에 올라온 글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이를 부풀려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글을 퍼뜨렸다면 민사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인터넷 게시판 등의 글을 옮겨 확산하는 이른바 '퍼나르기'에 명예훼손 책임을 물은 것이다.

대법원 3부는 벤처업체 N사를 경영하는 남모(44)씨 등 4명이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명예가 훼손됐다"며 소액주주 정모(38)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5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2000년 초 N사의 주식을 샀던 정씨는 같은 해 10월 유명 증권 사이트에서 '남씨 등이 인터넷 주식공모로 금전을 편취했다'는 글을 봤다. 정씨는 곧바로 이 글에 "남씨 등은 배후 세력이 있는 전문 사기꾼 조직"이라는 내용을 추가해 여러 증권 사이트 등에 올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인터넷상 가상공동체(cyber community)의 자료실이나 게시판 등에 게시.저장된 자료에 대해 사실 관계를 조사하거나 확인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킬 만한 사실을 적시했다면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었다고 하더라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취득한 정보는 진위가 확실하지 않은 만큼 함부로 퍼나르기를 해선 안 된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또 "원고 측이 일부 돈을 횡령한 점이 있더라도 피고의 행위는 이를 단순히 과장하는 수준을 넘어 허위 사실을 퍼뜨린 것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 "인터넷 명예훼손에 경고"=법무법인 광장의 고원석 변호사는 "인터넷 명예훼손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데 따라 일종의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며 "단순히 글을 퍼나르는 경우에도 명예훼손 책임을 벗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민.형사상 명예훼손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지 않다"며 "네티즌들은 형사책임을 피하려면 타인을 평가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릴 때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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