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종(성균관대교수·사회학)|"거듭태어난 두김씨를 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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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2월의 단골손님인 구세군의 자선남비와 크리스머스 캐럴에도 불구하고 금년은 예년과 같은 송년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증론이다.
이것은 아마도 지난 16일의 대통령선거가 워낙 큰 국민적 관심사였고 잇따른 22일의 대입학력고사가 많은 사람들을 긴장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16년만의 대통령선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결과에서 받은 충격도 컸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어떤 좌석에서든지 두김씨에 대한 화제가 가장 쉽게 합의될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과격론자들은 한민족이 5천년만에 처음으로 포착했던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뜻에서 두김씨를 『민주화의 역적』이라는 극단적인 말로 몰아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차제에 『두김씨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정계에서 영원히 물러나야한다』는 초강경의 단선논리를 제시하기도 한다.
딴은 옳은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과격 단선논리도 실은 두김씨가 정말 미워서라기보다 이들에 대한 기대와애정이 그만큼 컸던데서 오는 일시적인 심리적 이반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두김씨를 통해 투사되었던 민주화의 청사진이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었기에 그꿈을 실현시켜주지 못한 두김씨가 한없이 원망스럽고, 때로는 역겹기까지한 것이다. 그리하여 한때 이들에게 보내졌던 열정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지가 증폭된 증오의 감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두김씨에 대한 울분과 증오도 서서히 삭여 한많은 12월과 함께 실패한 역사의 한 사건으로 묻어버리고 새해를 맞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 같다. 왜냐하면 효율적인 대여투쟁을 위해서는 미우나 고우나 아직은 두김씨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야권의 정치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김씨의 영향력 밖에서 정치력을 행사할수 있는 야당계의 「신데렐라」가 나타날수있다면 상황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럴 전망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돌아오는 총선에서 그나마 조직과 인맥·금력등에서 여당과 맞서는 흉내라도 낼수 있는 세력은 기존의 야당집단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전술적 차원에서도 괴롭지만 두김씨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밖에 다른 대안이 현재로서는 없는 것 같다.
이 경우 국민들은 사욕과 아집,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속죄의 마음으로 민주화투쟁에 헌신하는 거듭난 두김씨를 원한다. 그렇지 못하고 여당의 정책을 대안 없이 물고 늘어져 강경책을 유도한후 탄압받는 야당의 프리미엄을 얻어내려고하는 해묵은 술수를 쓴다면 국민은 결코 이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민정당과 노태우당선자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지금 세론이 두김씨에 대한 매도로 들끓고 있다고 해서 국민이 민정당과 노태우당선자를 이번 선거에서의 정당한 승리자로 보고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당사자들은 깊이 인식해야할 것이다. 분명히 이번 선거는 관권과 금력, TV의 조작이 극에 달했던, 도덕적으로 지극히 타락된 선거였음에 틀림없다.
이와같은 의미에서 볼때 이번선거를 통해 민정당과 노태우당선자는 법률적 정통성은 획득했지만 도덕적·정신적 정통성을 얻는데는 실패했다고 하겠다.
아마도 이것은 앞으로 노정권이 최대의 과제로 걸머지게될 국민화합의 정책을 추진해나가는데 있어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깨끗한 승부가 아닌 게임에서 부당하게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허탈하고 응어리진 마음을 어떻게 물어나갈수 있을지 정말 걱정된다.
한가지 방법이 있다면 선거공약에서 누누이 밝혔듯이 가식 없는 「보통사람」의 자세로 국정에 임하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정당과 노태우당선자도 역시 거듭나는 변신의 진통을 겪어야만할 것이다.
다행히 노태우당선자와 그의 측근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듯 하다. 여하튼 민정당과 노태우당선자가 야당보다 한발짝 앞서나가는 민주화정책을 추구하고, 사회 각 분야의 민주화를 국민이 피부로 느낄수 있도록 실시해준다면 민정당과 노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상당히 회복될수있을 것이다. 부디 새해에는 정치의 주역들이 상대자의 입지를 인정해 보다 생산적인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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