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과 일등병|―강등장군의 계급복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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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람이 세상에 나서 남길 수 있는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명예이고, 다른 하나는 재물이다.
명예없는 재물만 남겨놓기위해 산다면 그런 삶은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차라리 재물없는 명예를 선택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인간은 명예를 위해 살고 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만물의 영장」된 유일한 보람이다.
우리사회는 바로 사람의 그와같은 명예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이상한 풍조가 있다. 우선 스스로가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을 예사로 안다. 공직이나 마땅히 존경받아야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불명예를 자초하는 경우다. 부정부패다, 파렴치다, 부도덕이다 해서 자신의 명예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려 망신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적지않게 보아왔다. 『저 사람이 설마…』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사회엔 억지로 깎아 내려 상처를 입는 명예도 수없이 있었다. 그것은 광복이후 오늘까지도 계속되는 한국인물사의 단면이기도 하다.
해방과 더불어 친일파의 낙인이 그 첫째요, 한국동난기의 우익·좌익다툼이 그 둘째이며, 자유당 몰락이후 또 얼마나 많은 인사들이 얼굴에 먹칠을 당하고 밀려났는가. 정변은 그후에도 잇달아 「사쿠라」, 「반혁명」, 「반체제」, 「반정부」, 때로는 「혁신파」라는 허물까지 씌워 「인재무상」을 실감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명예는 한번 손상되면 거울처럼 닦는다고 맑아지지 않는다. 아무리 사필귀정이라도 그전의 명예를 되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 인간의 전생애와 생명까지도 걸려있는 그런 명예를 마치 거울을 짓밟듯 깨는 일을 우리사회는 너무도 쉽게 해왔다. 권력투쟁, 정치혼난, 인사부조리, 축재다툼, 정쟁의 희생자들이다.
어제 날짜 신문을보며 새삼 놀란 사실은 계급복권 심사대상에 오른 장군이 31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하루아침에 이등병으로 굴러 떨어졌다가 비록 예비역이기는 하지만 4개의 별을 다시 붙이게 될지도 모를 대장도 3명이나 되었다.
이들의 명예는 회복시켜야할 이유와 명분이 있기 때문에 회복시키려할 것이다.
사관학교를 나와 어깨에 4성을 달기까지는 우선 30년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그나마 순탄한길을 걸을때의 얘기고 실상은 그보다 더한 시간을 군무에 봉사해야 한다.
시간만이 아니다. 군에서 30년을 부대끼려면 격전장의 죽음을 무릎쓴 체험과 작전능력과 통솔력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피와 눈물로 얼룩진 전투복을 수백, 수천번을 갈아 입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어깨에서 별을 뜯어내고, 그 자리에 2등병의 계급을 부여하는 것은 사실상의 인격박탈이다. 불운하게도 그것이 정변이나 파쟁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라면 더욱 허무하다.
물론 여기에는 군이 섣불리 정치에 뛰어든 불찰도 없지는 않다. 그것은 원천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악의 순환은 이제 고삐를 잡아야 한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그 고삐를 잡는 좋은 계기를 주었다. 노태우대통령당선자는 「보통사람의 대통령」답게 상식과 순리를 존중하는 첫번째 징표로 강등장군들의 복권조치를 하려는것 같다. 뭔가보여주는 개혁의 빠른 항보를 실감할 수 있다.
바라기는 어디 군뿐이겠는가. 우리사회 구석구석엔 어루 만져야할 상처, 회복되어야할 명예들이 알게 모르게 너무도 많다. 노대통령 당선자의 넓은 귀와 6·29선언의 배포는 그런일을 능히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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