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과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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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국가와 독재국가를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여론을 존중하는 나라와 권위주의의 하향식 명령만 있는 나라의 차이다.
여론은 흔히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의 집합으로 알지만 그것은 과일에 비유하면 덜 익은 상태의 것이다.
진정한 여론은 공중이 갖고 있는 의견이다. 공중은 무비판적, 층농적인 군중과는 다르다. 이들은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고, 그 문제에 대처하는 생각이 저마다 다르고, 따라서 그 문제에 대한 충분한 토론끝에 어떤 결론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그점에서 공중은 비판적이고 이지적인 사회집단이다.
우리는 실로 오랫동안 「민주화」라는 문제에 직면해 왔다. 그러나 민주화를 어떻게 성취하느냐하는 문제엔 사람마다 입장에 따라 달랐다.
바로 그 다른 의견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동안 민주국가 답지않은 많은 문제들을 노출시켰다.
여론은 결코 우연의 소산이 아니고,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 있다.
첫째는 <합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져야하고, 둘째는 그것을 위해언론·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하고, 세째는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독재국가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바로 이 과정이 순탄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었다. 정부는 민주국가라면 당연히 있어야할 여론 형성과정을 권력으로 가로막고, 방해하고 때로는 폭력으로 억압했었다.
결국 여론을 존중하느냐, 않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의 과정에서 권력과 국민사이에 마찰과 갈등이 잇따랐다.
선진 민주국가에는 여론을 형성하는 절차와 기구들이 잘 짜여져 있다. 우선 집단의 차원에서 정당정치가 보장되고 사회의 차원에서 각종 압력단체들이 활기있게 움직이며 개인차원에선 개개인의 의견을 묶어서 상품화하는 기구까지 있다. 이른바 여론수집기관이 그것이다. 이들은 남의 생각을 알아내 그것을 잘 분류하고 분석해서 상품으로 만들어 판다.
이런 조건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야 그것이 민주사회이고 민주국가다.
우리나라에도 여론수집 활동은 있었다. 그러나 권력에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여론의 공표는 은연중 제한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민주국가는 겉으로 보기엔 시끄럽고 흔들거리는것 같지만, 그래도 뿌리나 줄기가 꿋꿋이 버텨 내는 것은 여론의 힘이 뒤에서 받쳐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민주헌법과 민선 대통령을 갖고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마당에 여론을 존중하지 않고는 탄탄한 민주국가가 될수없다. 사회의 여론조사기관들은 그점에서 책무를 느껴야하고 스스로 사명을 찾아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이런 기능들이 활발하게 작동하고 그것이 여론으로 수렴되고 정책에 반영될때 비로소 민주국가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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