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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채용비리 조사 … ‘낙하산’ 근절 방안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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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동연 부총리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인사·채용 비리 근절 간담회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 부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연합뉴스]

김동연 부총리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인사·채용 비리 근절 간담회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 부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연합뉴스]

정부는 27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법무부, 행정안전부 등 12개 부처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공공기관 채용 비리 관련 관계 장관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전인 지난 23일 “공공기관 채용 비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칙과 특권의 상징”이라며 “전수 조사라도 해서 진상을 규명하라”고 지시한 뒤에 나온 후속 조치다.

정부 “모든 공공기관 5년 채용 조사” #관련자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해임 등 중징계에 대검 수사 대상 #낙하산 CEO 오면 외부민원에 약해 #전문가 “청탁에 안 흔들릴 시스템을”

공공기관 채용 행태에 대한 전수 조사와 불법 행위 연루자에 대한 무관용이 주 내용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전체에 대해 과거 5년간 채용업무 전반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공공기관은 물론 지방 공기업과 지방 투자·출자 기관 등 공직 유관 단체 전체가 대상이다. 모두 합치면 1100곳이 넘는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비리 관련자에 대해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한다. 직급·보직과 관계없이 업무에서 배제하고 해임 등의 중징계를 하겠다는 얘기다. 채용 비리 연루자는 감사원 감사는 물론 대검찰청 반부패 수사부의 수사를 받을 수 있다. 채용 비리 청탁자는 실명과 신분을 공개한다. 채용 비리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 합격자에 대해서는 소명 기회를 주고 제대로 해명을 못하면 합격을 취소하기로 했다. 채용 비리 관련자는 향후 5년간 공공부문에 입사 지원을 할 수 없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공공기관의 채용·인사 비리 행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기관만 강원랜드 등 10곳이 넘는다. 김동연 부총리는 “공공기관 채용 비리는 청년의 꿈과 희망을 꺾고 위화감을 조성한다”며 “공공부문부터 뼈를 깎는 심정으로 채용 비리 근절에 나서면 민간 부문에도 같은 생각이 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지는 옳지만 핵심은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경영진 선임 과정에서 빈번한 ‘낙하산’ 행태에 대한 대응 방안은 없어서다. 전문성이 없는 인사가 공공기관에 들어오면 외부 청탁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이 수사 중인 강원랜드 채용 비리 당시 사장은 한나라당 강원지사 후보 경선에서 패한 뒤 석 달 만인 2011년 7월 사장에 취임돼 전문성 없는 인사로 논란이 일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 이런 행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문제는 새 정부 들어서도 낙하산 근절 대책은 없고, 오히려 과거의 전철을 밟으려는 조짐이 나온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지난 6월 당직자들에게 정부기관 파견근무 희망자를 모집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민주당은 “당규상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야당의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낙하산 인사는 약점이 있고 조직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내부 규율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자연히 인사·채용 분야에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의 채용 비리 척결 의지가 실현되려면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공공기관 경영진에 선임하고 외부 민원에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을 감독하는 주무부처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의 인사 비리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건 이를 감독하는 관료 사회의 묵인이 전제됐기 때문”이라며 “관계 부처가 공공기관을 엄격히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비리 의혹 3명 직위해제=한편 최근 신입사원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진 우리은행은 비리와 관련된 국내 부문장(부행장)과 검사실장, 영업본부장 등 3명을 27일 직위해제했다. 우리은행은 채용비리 의혹에 대한 자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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