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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무원 아들 잃은 공무원 출신 아버지, "살인적인 업무도 당연시하는 공직사회 바뀌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공무원들이 다시는 우리 아들과 같은 일을 겪지 않길 바랍니다.”

과다한 업무로 괴로워하던 아들 #지난 9월 18일 스스로 목숨 끊어 #“아들은 죽기 직전까지 야근” #“업무량에 맞게 인원수 배치해야”

지난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시 예산과 김모(28) 주무관의 아버지 김모(61)씨가 눈물을 삼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아들은 과다한 초과 근무와 업무량에 괴로워하다 지난달 18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지난 14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나와 아내 둘 다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했다. 아들 이야기에 김씨의 얼굴에는 경련이 일며 눈물이 흘렀다. 그는 “아들이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씩 웃으면서 들어올 것 같다”며 카페의 출입문을 한동안 바라봤다.

아버지 김씨도 22년간 공직에서 일했다. 사법부 일반직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 후 작은 가게를 운영해 왔지만, 아들을 잃은 뒤 문을 닫았다고 했다. 아들의 방을 보면 가슴이 무너져 내려 이사를 생각 중이라는 그는 오래전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었다.

김 주무관의 아버지는 인터뷰 중간에 '속이 답답하다'면서 공터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아들의 업무 수첩을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임선영 기자

김 주무관의 아버지는 인터뷰 중간에 '속이 답답하다'면서 공터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아들의 업무 수첩을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임선영 기자

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공무원을 꿈꿨다. 2014년 서울시 7급 행정직에 합격한 뒤 2015년부터 서울시 본청에서 근무했다. 독학으로 공무원시험에 합격했을 때, 부모님은 “장원급제한 것처럼 기쁘다”면서 아들을 안아줬다. 초등학생 시절 얼굴을 다치는 바람에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장을 딴 아들이었기에 더욱 애틋했다고 한다. 부모에게 부담이 될까 봐 브랜드 운동화를 사주겠다고 해도 마다하고, 방학이 되면 아르바이트로 제 용돈을 벌던 속 깊고 착한 아들이었다.

김 주무관은 첫 업무로 청소년 관련 업무를 했다. 아버지는 이때까지만 해도 아들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지난 1월 예산과로 발령을 받은 후 집에서도 아들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8월 한달간 27일간 170시간의 초과근무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들은 예산철인 지난 7월부터 주말도 예외 없이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 8월부터 숨지기 직전까지는 거의 매일 밤 12시가 넘어 집에 왔다. 새벽 3~4시에 퇴근한 날에도 잠깐 눈 붙이고 아침 8시에 출근했다”고 말하는 김씨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김씨가 꺼내 보인 아들의 업무 수첩에는 일별 업무로 빼곡했다.

김 주무관의 업무 수첩에는 일별로 처리할 일들이 정리돼 있었다. 하루에만 수십 가지의 업무를 해야할 때도 있었다. 임선영 기자

김 주무관의 업무 수첩에는 일별로 처리할 일들이 정리돼 있었다. 하루에만 수십 가지의 업무를 해야할 때도 있었다. 임선영 기자

“아들의 추모식 후에 박원순 시장과 류경기 부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직원들이 이렇게 일하는 걸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하더군요.”

김씨에 따르면 김 주무관은 숨지기 이틀 전인 지난달 16일 토요일에도 야근을 하고 자정이 넘어 집에 왔다. 17일 일요일에도 출근해야 했지만 휴대전화를 꺼두고 무단결근을 했다. 집에는 “휴가를 냈다”고 했다. 18일에도 출근하지 않자 오전 9시20분경 김 주무관이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같은 과 직원이 전화를 했다.

어머니가 아파트 관리인의 연락을 받고 무단결근 사실을 알게 되자 아들은 “업무가 너무 많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어머니는 마음이 아팠지만 “무단결근은 안 된다. 일단 다녀오라”고 타일렀다. 당시 아버지는 지방 출장 중이었다. ‘출근하겠다’며 나갔던 김 주무관이 향한 곳은 서울시청이 아니라 아파트 옥상이었다.

김씨는 “‘복지’를 강조하면서 정작 직원의 살인적인 업무는 당연하게 여기는 공직사회 문화에 회의를 느낀다”고 했다. 그는 “구조적인 모순도 있다. 업무량이 많은데도 사람이 적어서 힘든 부처와 부서가 있고, 업무량에 비해 사람이 많은 부처와 부서도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김 주무관의 형도 진로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26일 서울시청 본관 1층 로비에선 김 주무관의 이별식이 열렸다. 김 주무관의 아버지 김씨가 아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시청지부]

지난달 26일 서울시청 본관 1층 로비에선 김 주무관의 이별식이 열렸다. 김 주무관의 아버지 김씨가 아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시청지부]

박원순 시장이 부임한 2011년 이후 김 주무관을 포함해 7명의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5년 12월 2명이 잇따라 투신한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직원 중심의 조직문화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또 다른 투신 사건이 발생했다. 박 시장은 “다양한 형태의 논의 틀을 만들고 새로운 직장문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서울시는 부서마다 업무량에 비례해 직원 수는 적절한지, 한 사람이 너무 과중한 업무를 맡고 있진 않은지 들여다보고 잘못된 부분은 확실히 뜯어 고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은 또 생길 것이다”고 호소했다. 이어 “박 시장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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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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