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기 왕위전] 요술거울 같은 바둑판 속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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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37기 왕위전 도전5번기 제3국
[제2보 (25~45)]
白.李昌鎬 9단 | 黑.曺薰鉉 9단

바둑은 누가 만들었을까. 축구든 골프든 대부분의 게임은 만들어진 과정이 잘 알려져 있건만 바둑은 워낙 오래된 탓에 그 출발이 안개 속에 싸여 있다. 5천년 전의 까마득한 요순시절 포이라는 신선이 만들었다고도 하고 요임금이 직접 만들었다고도 한다. 바둑보다 더 먼저 만들어진 게임은 없을까. 아마도 없는 것 같다.

이창호9단은 어렸을 때 바둑을 만나자마자 흠뻑 빠져들었다. 바둑은 그에게 요술거울이어서 안으로 걸어들어가면 갈수록 온갖 신비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는 꿈속에서도 바둑만 생각했다. 이창호를 두고 어떤 이들은 '전생 고수의 환생'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창호가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세상의 최고수가 됐기 때문이다. 이창호는 그러나 다른 게임, 예를 들어 테니스라든가 카드게임에서는 남보다 뛰어나지 않다.

조훈현9단은 머리로 하는 게임에서는 어느 종목이나 발군의 능력을 보여준다. 두사람은 모든 면에서 다른데 가장 큰 차이는 曺9단은 빠르고 李9단은 느리다는 점일 것이다.

曺9단은 25부터 공격에 착수한다. 李9단은 26으로 척 붙여 고개를 내밀었는데 이 수는 A보다 한결 능률적이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26에 대해 흑이 '참고도1'처럼 두는 것은 백4까지 흑이 매우 나쁘다.'참고도2'역시 좋지 않다.

백△ 두점은 근본적으로 작다. 그 이유는 흑은 어차피 29에 이단젖힌 다음 33으로 끊어가는 수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曺9단이 감히 흑B를 선수하지 못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44로부터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요술거울 같은 바둑판 속에서 끝없는 탐험을 거듭해온 이창호9단, 그는 28살이 된 요즘도 바둑이 그토록 재미있을까. 혹은 파고 파도 끝도 없는 바둑에 조금쯤 피로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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