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문화읽기] 티슈의 원조는 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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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요즘은 코를 풀거나 식사 후 입을 닦을 때 두루마리 휴지 대신 티슈를 사용하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문화가 됐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두루마리 휴지를 더 많이 썼는데, 이제는 티슈 박스를 식탁이나 테이블에서 흔히 발견하게 된다.

현대인의 에티켓이 된 티슈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

쉽게 추측해 보자면, 에티켓 문화가 발달한 유럽의 귀족사회에서 처음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사실은 에티켓과 거리가 먼 군대에서 처음 사용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0년대 중반, 미국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 병사들에게는 붕대로 쓸 천이 턱없이 부족했다.

여기에 주목한 미국 킴벌리 클라크사는 얇은 종이 두세장을 겹쳐 질기고 튼튼하면서도 부드럽고 흡수성도 뛰어난 '셀 코튼'이라는 부드러운 종이를 개발했다. 이 종이는 흡수성이 뛰어나고 상처에 댈 수 있었으며, 가스 마스크용 에어필터로도 사용이 가능했다. 이 종이는 큰 인기를 누리며 대량생산됐다.

그러나 1917년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미 만들어 놓은 종이가 많이 쌓이게 됐다.

남은 종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궁리하던 킴벌리사는 '멋쟁이 아가씨의 화장 지우개'라는 모토로 이 종이를 화장 지우개로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후 회사에 '이 종이로 코를 풀면 매우 좋다'는 편지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판단과 달리 이 종이는 화장 지우개로서 뿐만 아니라 코를 푸는 데 더욱 편리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서구인들은 코를 풀 때 손수건을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감촉이 부드럽지 않고 청결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티슈가 등장하자 부드러울 뿐 아니라 1회용이라 청결해 일반인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때맞춰 상자에서 한장씩 꺼낼 수 있는 '팝업 박스'가 개발되면서 티슈는 매우 중요한 생활용품이 됐다.

국내에 티슈가 처음 보급된 것은 1971년. 우리나라 사람들이 티슈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년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식탁 위에 두루마리 휴지가 놓일라치면, '화장실에서 쓰는 휴지를 식탁 위에 놓았다'며 서양사람들이 보면 기겁할 거라고 스스로 타박하고 있지만, 그렇게 기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티슈의 발명과 티슈문화의 내막에는 에티켓으로 포장된 나름의 상술이 숨어 있었다는 걸 알고 나면 말이다.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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